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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은 한 해가 다 가도록 정쟁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야당은 친노와 비노로 나뉘어서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어 정치에 대한 혐오감만 키우고 있다. 원래 정치란 대립과 갈등을 조정해서 원만하게 이끄는 것인데, 요즘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은 끝이 안 보이는 대립과 갈등뿐이다. 이런 대치 정국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흔히 ‘오픈프라이머리’라고 부르는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내년 총선 공천을 여야가 같은 날에 시행하는 오픈프라이머리로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픈프라이머리는 아직까지는 김 대표의 개인 생각일 뿐이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가 이를 당론으로 채택한 적도 없고, 당내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적도 없다. 김 대표가 정녕 오픈프라이머리를 하고 싶다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연구했어야 한다.

정당이 공직선거 후보를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선거를 두 번 치르는 셈이다.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서 모든 정당에 개방형 국민경선을 하라고 강제하는 경우에 소수 정당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살펴야 한다. 개방형 국민경선에 소요되는 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것인지, 아니면 각 정당이 부담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이 계속 줄어들어가는 추세를 감안하면 개방형 경선을 시행한다고 해서 과연 유권자들이 얼마나 참여할지도 알 수 없다. 직장인들이 경선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선 경선일을 휴일로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김무성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_경향DB


정당이 공직선거 후보를 오픈프라이머리로 뽑고자 하면 정당의 권능과 역할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후보 공천을 개방형 경선에 위탁하는 정당이라면 구태여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 같은 거창한 조직을 갖추고 있을 이유가 없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거니와 경선에 나서는 후보자들도 막대한 선거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어렵게 당선된 당 대표와 최고위원도 선거에서 한번 패배하면 추풍낙엽 신세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의 권위도 전과 같지 않다. 매일 아침 두 정당의 최고위원회에서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는 거의 막장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기왕에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을 도입하려고 한다면 정당을 원내화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중앙당은 정당의 정책을 개발하고 홍보하며, 당원을 확충하고 교육하는 기능만 담당하고, 당 대표가 해 오던 기능은 원내대표가 맡아서 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당구조 개혁도 없이 단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하니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프라이머리’라고 불리는 당내 후보 경선은 20세기 초 미국 위스콘신에서 유래했다. 남북전쟁 후 북부에선 민주당이 사실상 소멸되어 공화당 후보가 당연히 당선되다시피 하자 유권자들이 공화당 후보를 스스로 선출하자는 운동이 생겨났는데, 당원들이 후보를 선출하는 폐쇄형 경선이 비당원에게도 개방되어서 오늘날 오픈프라이머리로 발전한 것이다. 미국의 프라이머리는 주마다 형태가 다른데, 완전개방형 프라이머리, 반(半)개방형 프라이머리, 결선투표 방식의 톱 투 프라이머리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우리로서는 각기 다른 프라이머리 중 어느 것이 우리 사정에 적절한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할 뿐 아니라 시행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이를 시행하고자 하는 선거가 있기 2~3년 전에 필요한 입법을 하는 등 준비기간을 가져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내년 총선에 앞서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판단이 옳다.

그렇다면 오픈프라이머리에 집착하는 김무성 대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김 대표는 현재 새누리당 당헌·당규가 정해 놓은 상향식 공천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을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한다. 김 대표가 이런 주장을 하는 데는 청와대와 친박의 공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총선 공천이 김 대표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잘 보여주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이 일종의 악몽으로 남아 있는 박 대통령은 오픈프라이머리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낙하산을 타고 우세 지역구에 내려오고 싶은 청와대의 ‘십상시’들에게도 오픈프라이머리는 장애물일 따름이다. 오픈프라이머리는 김무성 대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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