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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쳤다. 엄지손가락 뼈가 그야말로 ‘똑’ 부러졌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면서 “아주 말끔하게 부러졌네요”라고 했다. 초등 2학년 마지막 날. 온몸으로 기뻐하며 봄방학을 맞이한 결과였다. 이 추운 날에 친구들과 징검다리를 놓겠다며 커다란 돌덩이를 들다가 자기 손을 찧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도 크지 않았고, 별로 아파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손가락에 밴드 따위를 붙이고는 몇 시간이나 더 놀다가 저녁 먹을 때 집에 돌아와서는, 그제서야 손가락을 내보였다. 그 정도였으니 뼈가 부러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에야 읍내 병원엘 갔다. “오늘, 큰 병원으로 가실 거죠? 여기는 마취전문의가 없어서 수술 못해요. 단순골절이고, 핀 박는 거는 아주 간단한데, 아이라서 전신마취 해야 되거든요.” 의사는 아이에게 석고 붕대를 한 다음 소견서를 써 줬다.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서, 큰 병원으로 갔다. 꼬박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거리. 읍내에는 병원도 여럿이고, 정형외과도 몇 개 있다. 그러나 아이의 손가락 골절을 치료할 수는 없는 형편.

처음 시골 내려올 때, 주위에서 걱정하면서 물었던 것이 돈벌이, 교육, 의료, 이렇게 세 가지가 가장 많았다. 돈벌이는 점점 적게 벌고 그만큼만 쓰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고, 교육은 아이들이 (그래도 도시에서보다는) 잘 놀면서 자라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의료는 간단하지 않다.         

사실 병원은 잘 가지 않는 편이고, 건강은 스스로 돌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좋은 의사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는 잘 알고 있다.

귀농, 귀촌한 사람 가운데 꽤 많은 사람이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한다. 무엇보다 돈벌이가 어려워서이겠지만, 그 다음으로는 살기에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로 꼽히는데, 의료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읍내에는 하나뿐이던 응급의료기관이 있다. 그러나 얼마 전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서 응급실 지정이 해제되었다고 했다.

전국으로 따져서는 외과가 없는 지역이 서른 곳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각각 쉰 곳. 시골이니 사람이 적게 살고, 그만큼 병원 가기가 불편한 것이야 당연하겠다 싶으면서도, 응급실 가는 데에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소아과를 가려 해도 그만큼이라니.

이럴 때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은 크고 번듯한 군청 옆 보건소 건물이다. 언제 가도 그 넓은 건물이 조용하다. 진료를 기다리는 대기자가 여러 사람인 것도 거의 본 적이 없다. 아마 보건소 건물을 짓는 예산도 보건복지 예산이었을 것이다. 10년도 되지 않은 건물이었는데, 지난해에는 멀끔한 건물 내부를 수리한답시고 다시 돈을 들였다. 가까이 있는 면 보건소도 지난해 몇 달 동안 보건소 문을 닫고 공사를 했다.

언젠가 감기가 심해서 이 보건소에 간 적이 있었는데, 처음 받아 온 약(알약 한 알)이 도통 듣지 않아서, 증상을 다시 얘기하고 다른 처방을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감기약은 그거 하나뿐인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몇 달 공사를 할 돈은 있어도, 감기약 몇 가지 더 구비할 돈은 없는 보건소였다.

다행히도 아이가 수술을 받은 병원은 여러 가지로 마음이 놓였다. 의사든 간호사든 바쁘긴 해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무슨 이야기든 잘 듣고 찬찬히 이야기해 주었다. 병원 일을 처리하는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       

수술은 잘 받았고, 아이는 그저 석고 붕대가 갑갑할 뿐이라, 벌써 붕대 풀 날짜만 헤아리고 있다. 앞으로 한 달 넘게 꼬박꼬박 그 먼 길을 다녀야 하는 일이 남았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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