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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점


1. 키는 작지만 남들로부터 섹시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2. 화장을 잘한다. 


3. 밀땅을 잘한다….



며칠 전 재활용을 하기 위해 종이상자를 정리하다가 A4 용지에 고1 딸아이가 써놓은 내용을 발견했다. 딸과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거의 ‘황당 10대 배틀전’이 벌어진다. “어휴. 제 딸은 저 몰래 가슴 커지는 크림을 바르고 있더라고요” “고1 아들이 며칠 전에 자기 방에서 야동을 보다가 나한테 딱 들켰잖니!” “몰래 그 비싼 가수 콘서트에 다녀왔더라고요” 등의 자식에 대한 다양한 ‘고발’이 쏟아져 나온다.


가족의 ‘소 자녀화’ 현상과 맞물려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공교육의 부진, 인권의식과 성평등 의식의 확산, 여학생의 약진과 남학생의 뒤처짐, 성문화 개방, 소비자본주의의 만연,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청소년들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화와 인권의식의 영향을 받아 권위주의에 대한 청소년들의 저항감은 상당하다. 여학생은 당당하고 독립적으로 성장하며 지적으로 개발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남성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외모를 가꾸는 것에 더욱 열을 올리는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남학생들은 “아 옛날(가부장 시대)이여~”를 되뇌며 변화에 대한 적응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사회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각종 의류, 화장품, 식품 등을 광고하며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하게 퍼진 스마트폰은 청소년들의 친교문화 및 총체적인 생활습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항하며 변화를 좇아가는 청소년과 호통치는 보수적인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근대의학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남아들에게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혹은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청소년이 된 자식들은 부모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괴물이 되었고, 부모들은 보호라는 미명하에 언어폭력 등을 자행하여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율성과 독립에 대한 욕망과 따뜻한 사랑을 동시에 갈구하는 청소년의 성장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이러한 변화를 질환 혹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진단하고 다양한 약 복용과 훈육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럴수록 청소년들은 더욱 거세게 반항하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역사적으로 아동·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은 변해 왔다. 조선시대 민화에 현재의 중·고등학교 연령의 아이와 어른들이 함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대략 17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동·청소년들은 미술이나 문학작품에서 선하게 묘사되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이상(ideal)이 대두되면서 섬세하고 집중적인 사랑을 받아야 할 제왕(帝王)으로 등극했다.


지금의 아동·청소년들도 과거처럼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그전처럼 무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사람들을 거북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청소년들은 사회변화의 가장 첨단에 서 있다.


tvN <코리아 갓 탤런트>에 출연한 여고생 코믹 립싱크 듀오 IUV.


느린 남학생들의 속도를 이해해주는 학교사회, 권위주의와 성차별이 사라지며 여학생과 남학생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외모지상주의와 소비자본주의의 창궐이 누그러지는 사회, 스마트폰 사용의 적절한 기준이 지켜지는 사회는 어른과 청소년 간의 소통에 달려 있다. 청소년들을 믿어주며 규율권력에 대한 저항을 지켜봐주고 방황을 기다려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보호자들이 청소년들을 위해 해주어야 할 것은 기도와 사랑으로 가득 찬 부양뿐이다.


그러고 보니 솔직히 나는 딸이 가진 장점 중에 한 가지도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잠시 열등감을 느꼈나보다. 언제 기회가 되면 그 기술을 전수받아야겠다. 우선 화장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울 딸~ 이번 주말엔 엄마한테 눈 화장하는 법부터 가르쳐줘.”


‘오늘도 무사히’, 택시 타면 가끔 볼 수 있는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이 ‘나’인 듯하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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