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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개봉된 가족영화 <고령화가족>.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에 따른 경제위기와 실업, 여성가장,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불혼’ 청년들이 양산되는 한편, 개인의 자유에 입각하여 혼인 규범을 넘어서는 연애가 이루어지는 시대를 유쾌하게 그려냈다.


주인공 가족에서 삼남매의 부모는 매우 이질적이다.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한모(윤제문 분)는 아버지가 혼인제도 밖에서 데리고 온 아들이고, 미연(공효진 분)은 엄마(윤여정 분)가 연애를 해서 낳은 딸이며, 인모(박해일 분)는 부부의 온전한 피가 섞인 ‘정상적’ 자식이다. 이처럼 이 가족은 부계 혈통 중심의 가족을 흔드는 전복성을 갖추고 있다. 미연은 ‘되바라진’ 중학생 딸의 엄마다. 그녀는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지고 또 다른 남성과의 발랄한 연애를 포기하지 않는다. 인모의 부인은 소위 ‘바람난 여성’이다.


고령화 가족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인모가 자신의 부인과 바람난 상간남을 추격해 한강변에서 무참히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상간남을 ‘반병신’으로 만들었지만 정작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은 형 한모다. 이처럼 ‘콩가루가족’의 요소를 갖추었지만 ‘고령화가족’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가족 사랑’이다. 한모는 동생을 대신해 교도소에 수감되고, 가출한 여조카를 찾기 위해 또다시 감옥행이 예정된 ‘바지사장’을 자처하며, 미용실 주인에게 매일 만두를 사다주며 구애를 하지만 그녀와 동생 인모의 ‘하루 데이트’를 목격하고는 애닳아 하면서도 눈감아 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은 다양한 젠더폭력을 경험한다. 미연의 딸은 가출했다가 성폭력을 경험한다. 미연은 두 번째 결혼에서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을 경험한 후 짐을 싸서 친정으로 들어온다. 엄마의 공식적인 직업은 화장품 외판원이지만 할아버지가 된 미연의 아버지와 애매한 사랑을 나눈 대가로 돼지고기를 선물로 받는다.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서 다양한 폭력의 경험을 ‘경험할 수 없는 자들의 연대체’로서의 가족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영화 <바람난 가족>의 발칙함과는 달리 좌충우돌하는 세남매의 우환을 가족애의 상징인 ‘정성스러운 된장찌개’로 승화시켜내는 모습은 전형적인 모성이데올로기의 실현인 듯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신파조의 가족사랑과 결혼제도로의 유입(미장원 주인과 인모, 미연의 세 번째 결혼, 미연아버지와 어머니)으로 귀결되는 장면들은 구태의연함까지 느껴진다. 아들들을 대신해 밥벌이를 하면서도 잔소리 한번 안하면서 묵묵한 사랑으로 보듬는, 매일 저녁 된장찌개와 돼지고기를 구워 자식들에게 먹이는 엄마, 소위 ‘콩가루가족’의 일원이면서 가족사랑의 구심점이 되는 엄마. 이것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듯하지만 매우 비현실적이다. 생계부양자, 가족갈등의 조정자, 가족사랑의 구심점으로서의 엄마 역할이 영화에서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지 모르지만, 내겐 옥에 티로 느껴진다. 

된장찌개를 정성스레 끓이면서 ‘가슴 속에 스며드는 고독에 몸부림칠 때’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읊조리는 어머니들의 현실과 욕망의 가슴 아픈 타협. 전반적으로 발칙하게 여겨지는 이 영화에서도 생략된, 이 땅의 마지막 식민지일 수 있는 어머니의 경험을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그날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혁명을 목격하는 때가 아닐까? 왜냐면 ‘가족구성원 모두가 막나가는 듯한 콩가루가족’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평범한 가족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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