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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분들은~ 배려하며!”


“여성분들은~ 뻔뻔(fun fun)하게!” 


최근 뒤풀이 모임에서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제안하기도 한다. 작년이었나 보다. 결국 피할 수 없이 내 차례가 다가오자 잠시 고민하다가 성별화되어있는 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고려하여 건배사를 제안하였다. 


“남성분들은 ‘배려하며’, 여성분들은 ‘뻔뻔하게’ ”. 간신히 내 차례를 모면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왠지 찜찜하다. 만약 그 자리에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여성 성별정체성을 지닌 사람은 어떤 건배사를 외쳐야 했을까? 등등의 생각 때문에.


매년 7월1일부터 7일까지의 1주일은 여성주간이다. 여성주간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성기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을 위한 때일까? 


소수일 수 있겠으나 생물학적인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하지 않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범주의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그(녀)들이 당하는 인권침해와 고통은 예상외로 심각하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법원은 법적 성별변경과 관련하여, 전환된 성에 부합하는 외부성기를 형성하는 수술을 요구하였다. 수천만원의 수술비용이라는 과도한 부담을 부과하게 할 뿐 아니라 헌법 제12조의 신체의 자유, ‘신체 불훼손의 권리’를 침해하는 이 외부성기 수술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서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2011년 대법원은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나 미성년자가 있는 자에 대한 성별정정신청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의료적 위험성이 높고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때문에 성기 성형수술을 못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약 20년간 사실혼 관계를 지속하여 왔으나, 2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직장을 구하지 못하였고, 아내와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자를 포함한 5명의 FTM(Female to Man,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나 남성 성별정체성을 지니는 사람)에게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성애자 성전환자는 이제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이 바야흐로 인권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성전환자의 성별변경을 인정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성소수자들에게 가족구성권을 부여하는 입법적 지원방안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미성년자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바뀌어야 한다. 반갑게도 제19대 국회에서는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조사분석 요구서도 접수되고 있고, 나는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고 회답서를 작성한다. 마침내 성적 소수자가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만드는 입법 환경은, 국민들의 인식개선이 뒷받침되어야 제도화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떠한 건배사를 사용할까? 


“남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배려하게’에서 강도를 높여) 머슴처럼!”


“여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뻔뻔(fun fun)하게!” 


“아니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커밍아웃(coming out)을 강요하는 것 아닐까?” 


건배사도 공부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다음엔 유쾌하고 성적 소수자의 인권침해가 없는 건배사 개발에 들어가야겠다.


[여적] 성차별 건배사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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