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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전에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가리왕산이 순간의 기쁨을 위한 화장을 걷어내고 벌거벗은 맨몸으로 장마와 폭우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간의 짧은 흥분의 마취제를 처방받은 것처럼 잠시 잊고 있었던 올림픽의 경제효과 허상이 사라져갈 즈음, 지역주민의 불안과 사회적 갈등이 마취에서 깨듯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지킬 생각조차 없었으면서 마치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킬 것처럼 복원약속을 하고, 축제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왕 만든 것이니 계속 사용하자’는 철지난 개발경제논리의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마치 그 약속이 철저히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허가를 내준 중앙정부는 지난 10년간 뒷짐을 지고 있다가 새빨간 거짓말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지금에 와서야 이 논란을 남 탓으로 돌리며 응급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 가리왕산의 복원을 생각했다면 이미 10년 전부터 수많은 것들을 준비했어야 했다. 훼손하기 이전, 주변을 포함한 자연환경의 정밀조사를 통해 복원에 필요한 수목을 기르기 시작해야 했으며, 토양을 준비해야 했고, 변화된 환경에서 어린 식물의 적응 가능성을 검토했어야만 했다.

알파인 경기장 주변, 지난달 상대적으로 적은 비에도 불구하고 재난관리기금으로 응급복구를 진행해야 할 만큼 큰 피해를 입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6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와 32조원의 관광수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 많은 수익을 내고도 수익의 1%도 되지 않는 가리왕산의 복원비용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지 모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지금부터 벌어질 손해는 또 고스란히 우리의 세금으로 메꿔야만 한다. 그렇게 자본은 권력과 결탁해 이익을 사유화하고 자신들이 메워야 할 손해를 공유화한다.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바르건 바르지 않건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실시간으로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며 훌륭한 학습효과로 각인된다. 멀게는 일제강점기의 친일매국자들,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이 만들어낸 엇갈린 삶의 역사, 29만원밖에 없는 사람이 살아온 역사, 가까이에는 갑질 재벌가가 만들어내는 일그러진 풍경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살아 있는 학습의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학자적 양심으로 4대강을 반대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반면, 그 부역자들은 정부의 막대한 연구지원을 기반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현실에서 어느 누가 공익과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낼 것인가? 교과서보다 더 중요한 이 살아 있는 교육에서 우리가, 특히 앞으로 사회를 이끌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훈은 무엇일까? 공무원이 되기 위해, 법관이 되기 위해, 시험에서는 교과서에서 외운 정의로운 죽은 답을 찾겠지만, 공무원이건 판사건, 검사건 현실에서 마주한 이 살아 있는 학습결과를 따르는 지금의 사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복원을 포함하여 하천이나 계곡의 복원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강물의 거대한 힘이 스스로 복원의 기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반면 산림, 그것도 고산식생 복원은 수십 년의 노력으로도 효과를 보기 어려운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미 가장 중요한 1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서는 더욱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빠른 시작이기에 하루빨리 체계적 계획을 수립해야만 한다. 아울러 재해 방지를 위한 조치는 확실히 하되 반드시 임시적이어야만 한다. 재해방지를 위한 시설물이 고착화되는 순간 복원은 영영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났다. 촛불혁명의 사후약속은 정의로운 삶이 훨씬 고귀하다는 것을 새 역사로 만들어가야 할 시대적 책무일 것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후진적 지방자치는 사라져야 할 때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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