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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리셋!

opinionX 2018. 6. 22. 10:36

“잔치가 끝났다고 모두가 이렇지는 않겠지.” 얼마 전 ‘녹색연합’ 회원들과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르고 난 가리왕산 알파인경기장에 갔을 때 들었던 생각입니다. 가리왕산, 가보곤 싶었지만 경기장을 생각하면 자꾸 연상되는 흉한 몰골이 꺼림칙해 가보길 미루었던 곳입니다. 이번에 직접 가서 본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지난 5월 중순, 시간당 최고 30㎜, 이틀간 80㎜가 내린 봄비에 경기장 슬로프는 온통 크고 작은 자갈로 뒤덮였고, 포장도로는 돌무더기로 변해버렸습니다. 빗물이 돌과 흙을 끌고 내려와 수로를 비롯한 각종 인공구조물을 막고 무너뜨리고 찌그러뜨렸습니다. 복원은 차치하고, 당장 이번 여름에 산사태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지난 9일 녹색연합과 전문가 조사단이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의 알파인스키장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달 호우 때 흙이 쓸려내려가면서 굴러내린 돌 더미들이 경사면을 덮고 있다. 가리왕산 스키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도 복구나 재해예방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장마철을 앞두고 심각한 재난 우려가 나온다. 정지윤 기자

가리왕산은 조선 세종 이후 벌목을 금지해온 봉산이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생태자연도 1·2등급지역, 녹지자연도 8·9등급지역, 다양한 세대의 주목 군락지라는 사실도, 이 경기장은 올림픽을 마친 뒤 바로 철거해야 하는 1회용이라는 사실도 경제를 비롯한 각종 올림픽 효과 앞에선 모두 무력했습니다. 하기야 설악산이 국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보존연맹 엄정자연보전지역, 백두대간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사실도 케이블카사업 앞에선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일단 가리왕산에 알파인경기장을 짓기로 결정하자, 500년간 보전해온 축구장 70개 넓이의 숲, 10만여 그루의 나무가 한순간에 없애버려야 할 것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봄비에 자갈밭으로 변해버린 경기장은 정작 없애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가리왕산 경기장은 원래의 숲으로 복원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해 만들어졌습니다. 강원도, 산림청, 환경부, 환경단체, 전문가로 구성된 ‘가리왕산생태복원추진단’은 오랜 논쟁 끝에 가리왕산을 원래 상태인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목표로 복원하며, 경기장 전 지역의 곤돌라를 비롯한 모든 인공구조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이왕 만들어놓은 경기장이니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경기장 시설물 절대 반출 금지.” 경기장 주변엔 정선군번영연합회에서 내건 빛바랜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경기장 시설물 유지의 최종 목표는 아마도 지역의 ‘번영’일 겁니다. 그러나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바람이 과연 현실적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먼저,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주술처럼 반복했던 ‘수십조원’의 경제 효과가 실제로 발생했는지 물어야 합니다. 만일 발생했다면 그 수익이 누구에게 어떻게 돌아갔는지, 지역주민들은 그 효과를 얼마나 누리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정말 그렇게 엄청난 수익이 발생했다면, 이젠 복원이 순리입니다. 만일 발생하지 않았다면, 시설물을 유지한다고 해서 잔치할 때도 생기지 않았던 황금알이 잔치가 끝난 후에 생겨날 리 없습니다. 이제라도 복원이 순리입니다.

수백 년간의 자연보호림을 원래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원래’를 목표로 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너무나 당연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만큼 가리왕산은 원래에 가깝게 복원될 것입니다. 둘째, 복원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지키는 노력 자체가 중요합니다. 힘든 복원 과정은 우리가 가리왕산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새기는 사회적 학습 과정이 될 것입니다. 장기간의 복원 과정은 단기간의 이익만을 노리는 개발주의와 성과주의를 반성하는 정화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어떤 것이 복잡하게 얽히면, 우리는 그걸 ‘리셋’합니다. 빗나간 것을 원래대로 돌리는 겁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겁니다. 가리왕산을 둘러보며 함께 만들었던 구호를 다시 외칩니다. “가리왕산, 리셋!”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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