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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29일 밤, 서울 용산 이태원동 119-7번지 골목에서 두 번째 세월호가 침몰했다. ‘두 번째 세월호’란 말을 수차례 쓰고 지웠다. 한 번 비극을 겪었다고 다음 비극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웃다가도 심란하고, 자다가도 수시로 깼던 지난 한 달이었다. ‘두 번째 세월호’는 참사 규모만 해당하지 않는다. 유족을 향해 ‘시체장사’라 하더니 이번엔 ‘감성팔이’라 비난하고, 꼬리 자르기식 책임 전가가 등장하는 장면도 8년 전과 유사하다. 애도와 추모를 탈정치로 몰고 가려는 시도 또한 낯설지 않다. ‘두 번째 세월호’는 국가 권력의 총체적 무능이 한 사회를 유지하는 상식적 기준을 무너뜨렸고 정치적 내전을 불사했던 상황을 집약한 말이다.

정부가  사고라 고집해도 이태원 참사는 명백한 정치적 참사다. 외국인까지 포함해 전국에서 모여 축제를 즐기던 158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희생됐다. 적지 않은 희생자들은 세월호 참사, 코로나19에 갇혀 외로움의 벼랑 끝에 내몰렸던 세대들이다. 정부는 예측 가능했던 위험을 무시했고, 안전관리 법과 조례는 서류뭉치에 불과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력으로 막을 수 없는 사고라고, 주무부처 장관 역할을 ‘폼나는’ 일이라고 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이 아니라 내무부 장관이라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1의 헌법 가치가 무너진 데 따른 어떤 조치도 행사하지 않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국정 최고 지도자의 성찰이 없다. 법을 집행해야 할 대통령이 아직 검찰총장인 양 법을 수호하는 역할만 강조한다. 

국가애도기간, 근조 글씨 없는 검은 리본,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 참사가 아닌 사고를 강요했다. 국가 통제를 거스르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권력의 책임을 따지는 모든 질문을 봉쇄하겠다는 엄포나 다름없다. J S 밀의 <자유론>을 탐독했다는 윤 대통령은 밀의 어떤 자유론을 내면화한 것인가. ‘나의 자유는 다른 이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끝난다’는 자유론의 핵심은 무시한 걸까.

백번 양보해서 수습에 필요한 행정 능력이 부족했다 해도 정치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기회는 충분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치는 ‘통치를 작동하게 하는 가장 권위 있는 자원’이다. 이 해석대로라면 이태원 참사엔 통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권력은 ‘국가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국가’를 만든다고 했던 바우만의 경고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태원 참사를 가리키고 있다.

정치적 참사에 대응하는 모든 애도는 정치적이다. 정치적 참사는 정치적 애도를 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장 질문부터 시작하자. 경찰이 수습 최일선에 있었다면 자치경찰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이태원 축제의 거리에 마약 단속 경찰이 주로 배치됐던게 사실인지, ‘참사 골든타임 45분’은 경찰에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의도가 아닌지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수습의 최종 목표가 사정기관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질문도 빠뜨리지 말아야겠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 합의 하루 만에 대검찰청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질문이 늘어날수록 ‘정쟁화’ 프레임도 짙어질 게 분명하다. 여권과 보수 진영은 촛불집회와 한 인터넷 언론의 희생자 명단 공개를 빌미 삼았다. 집회에 가담하지 않고, 명단 공개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도 정부 책임을 묻기만 하면 야당 편, 불순한 세력으로 낙인찍을 기세다. 애도와 일상을 분리하려는 탈정치화 압박도 강해질 것이다. 일단 유족들이 막아섰다. 이들은 참사 한 달여 만인 지난 22일 통곡의 기자회견을 했다. 아직 슬픔을 가누기조차 힘들고, 단일한 요구를 모아내기 어려운 시기임에도 한목소리로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이제 우리가 최대치의 정치적 애도로 유족들을 부축할 차례다. 다행히 진상규명에 앞장서겠다고 나선 160여개 시민단체, 젊은 세대의 상실감을 채워 주려는 어른들의 노력이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다. 출퇴근길 버스 안에선 이태원 참사를 주제로 공개 설전이 벌어진다. 쉬쉬하며 슬픔을 목울대로 넘기기만 했던 세월호 참사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나 역시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당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치적인 애도가 무엇인지 찾을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정치 바깥에 서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새기고 새기면서.

<구혜영 정치에디터 koohy@kyunghyang.com>

 

 

연재 | 에디터의 창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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