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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응은 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 노동조합 파업에 대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진압을 떠올리게 한다. 그해 8월3일 연방 공무원 신분인 관제사들이 근무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레이건 대통령은 “국가 경제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즉시 업무복귀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파업 관제사들이 48시간 내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1만3000여명의 파업 관제사 중 1600여명만이 복귀했고, 레이건은 이틀 후 1만1300여명의 관제사들을 해고했다. 또한 해고된 이들이 향후 어떠한 공직에도 취업할 수 없도록 했다. 관제사 노조는 그해 10월 해산된다.

이 사태를 놓고 보수진영은 불법 파업에 ‘법과 원칙’으로 대응해 경제를 살린 영웅적 승리라고 평가한다. 진보진영에서는 노조의 힘이 약해지면서 미국 사회가 불평등의 경로로 들어서게 된 결정적 계기라고 본다. 어찌되었건 대통령 취임 7개월 만에 이뤄진 레이건의 이 조치가 감세, 규제 완화, 작은 정부, 민영화, 노동 유연성 제고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레이거노믹스’의 신호탄이 된 것은 맞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진압해 공장이나 물류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경제에는 득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증가한 부(富)가 어디로 가느냐다. 불평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대두 이후 불평등이 심화된 요인 중 하나로 노동자들의 협상력 약화를 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전체 임금노동자 중 노조에 가입한 이들의 비율인 노조 조직률이 미국의 경우 1963년 28.5%에서 2019년 9.9%로 떨어졌다. 현재 미국은 선진국 중 가장 불평등하다는 평가를 받는 나라다. 불평등이 덜하다는 북유럽의 덴마크나 핀란드는 2019년 현재 노조 조직률이 각각 67.0%와 58.8%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미국과 비슷한 10% 초반대다. 노조 조직률이 떨어지면 노동자들이 사용자와의 임금 등 노동조건 협상에서 밀리는 것은 물론 노동자에게 불리한 법과 제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정치적 힘도 약해진다. 노조가 쇠퇴하는 것은 노조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환경이 노동자 조직에 적대적인 이유가 크다. 그래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불평등은 20세기 자본주의가 낳은 문제라기보다 20세기 민주주의가 낳은 문제”(<거대한 불평등>)라고 분석한다.

2024년 파리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가 지난달 ‘프리주(Phryge)’라는 이름의 대회 마스코트를 발표했다. 프리주는 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군들이 쓴 프리기아 모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프랑스 혁명을 묘사한 작품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속에 등장하고 프랑스의 우표나 동전에도 도안돼 있는 이 모자는 ‘자유’와 ‘혁명’을 상징한다. 이 마스코트를 디자인한 올림픽조직위 브랜드 디렉터 줄리 마티킨은 “프리기아 모자는 우리가 보다 나은 것을 쟁취하기 위해 들고일어나는 것을 집단적으로 결심했을 때 갖게 되는 능력을 구현한다”고 설명했다. 멀게는 프랑스 혁명부터 지난 세기에 있었던 68혁명, 최근의 노란조끼 운동까지 프랑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시민들의 봉기에 대한 존중과 포용이 엿보인다. 인류가 발전해 온 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해지고 빈곤에서 벗어나는 노정에는 생산력 증대, 즉 경제발전의 덕도 있지만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도 큰 역할을 했다는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력에 공감이 간다.

진보든 보수든 어느 정부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파업을 반길 수 없다. 그래도 민주주의 정부라면 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것을 얻기 위해 파업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현 정부는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업무개시명령과 행정처분, 경찰 수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 온 부처가 달려들어 압박부터 했다. 불법, 범죄, 조폭, 귀족노조,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 조선노동당 2중대 등의 말폭탄으로 노조 혐오를 조장한다. 이 정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40년 전 레이건이 승리했듯이 이번 파업에서도 정부가 이길 것이다. 더 큰 걱정은 파업이 끝난 뒤다. 권리를 찾기 위해 집단적으로 일어서는 모든 이들이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올 것 같아 두렵다.

<김준기 뉴스콘텐츠 부문장 jk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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