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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특파원 시절이던 2009년 일본의 한 경제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미쓰비시UFJ리서치&컨설팅 이사장으로 있던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嚴)란 사람이었다. 오부치 게이조 내각(1998~2000) 때 총리자문기관인 경제전략회의의 핵심 멤버로 참여한 나카타니는 일본의 구조개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가 쓴 책 한 권이 현지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던 게 인터뷰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 그는 저서 <자본주의는 왜 스스로 무너졌나(資本主義はなぜ自壞したのか)>를 통해 미국형 신자유주의를 맹신했던 자신의 과거 판단이 오류였음을 인정하면서 규제 완화와 자유경쟁체제 강화가 일본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규제에는 사회나 경제를 정체시키는 요인이 가득하다고 봤다. 당시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식 자본주의가 초래할 사회의 영향을 과소평가했다”고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내가 가져간 그의 책 맨 앞 장에 <논어>에 나오는 구절인 ‘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자왈 과이불개 시위과의)’란 글귀를 적어줬다. “허물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허물”이란 의미를 그에게서 들으며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신자유주의 신봉자였던 그가 잘못을 깨닫고 ‘참회록’이나 다름없는 그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였던 것이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자취를 감췄던 ‘과이불개’란 말을 며칠 전 다시 접했다. 대학교수들이 선택한 2022년 사자성어로 ‘과이불개’가 뽑혔다는 기사를 통해서다. 박현모 여주대 교수는 ‘교수신문’ 기고를 통해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이유를 밝혔다.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야당 탄압’이라고 말하고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올 한 해의 상황을 이렇게 적확하게 짚은 말이 있을까. 다수가 잘못됐다고 하는데도, 민심과 동떨어졌는데도 귀를 닫는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5월 이후 대통령 주변과 정치권에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취임 초 대통령실 이전을 무리하게 강행하고 검찰 중심의 측근 인사를 요직에 앉히며 ‘불통 정권’이란 비난을 산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인사실패’라는 비판이 나오는데도 대통령은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했다. 하지만 사회부총리는 취임 34일 만에 사퇴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은 후보자의 잇단 낙마로 정권 출범 후 132일 동안 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실책이 잇따르는데도 고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인 경사노위와 국가교육위에는 김문수나 이배용 같은, 기구의 목적이나 취지에 맞지 않는 인사들이 위원장으로 올랐다. 제주4·3을 폭동이라고 하는 분을 진실화해위 수장으로 앉혔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에 ‘알박기’라며 날을 세웠으면서 자신들은 전임 정권의 국책연구기관장을 향해 사퇴 압박을 펴는 ‘내로남불’도 빠지지 않는다.

국가의 최고지도자로서 보여줘야 할 비전은커녕 막말 때문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리기도 했다. 해외순방 중 비속어 파문이 대표적 사례였다. 대통령실의 어쭙잖은 해명은 오히려 조롱만 불렀고, 풀 기자로 들어가 그 장면을 내보낸 MBC 취재진을 대통령 전용기에 태우지 않는 뒤끝을 작렬했다. 150여명의 희생자가 나온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진상규명은커녕 측근을 감싸고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모습뿐이다. 말이 안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들에 대해 잘못했다고 전혀 느끼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국민 통합은 외면하고 콘크리트 지지층에만 기대 ‘직진 모드’를 고집하고 있다. <사기>의 ‘관안열전’을 보면 신하는 군주에게 ‘잘한 점을 좇아 더 잘하게 하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아줘야 한다(將順其美, 匡救其惡)’고 했다. 적어도 주군을 모시는 참모들은 ‘과이불개’ 하도록 쓴소리를 해야 하지만 대통령 주변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2500년 전 쓰인 <논어>는 삶의 깊이와 교훈을 깨닫게 해주는 명저로 널리 읽힌다. 뜬금없이 웬 <논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대통령께 논어를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전 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정리된 이 저술은 지금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꼼꼼하게 제시하고 있다. ‘과이불개’도 거기서 나온 말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dury129@kyunghyang.com>

 

 

연재 | 에디터의 창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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