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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국인투자기업 A회사의 하청업체에 고용돼 일하는 사람들이 순댓국밥집에 모였다. 한 명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식 직원도 아니고 하청업체에 있는데 노동조합을 할 수 있습니까?” “하청업체를 통으로 계약해지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나는 노동조합을 해본 경험으로 당당하게 답변했다. “노동조합은 헌법으로 보장돼 있는 합법적인 단체입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가 노동조합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한꺼번에 해고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시도 때도 없이 권고사직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니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노동조합 활동은 헌법 33조에 보장돼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도 2명 이상이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단체교섭을 할 권리가 있다. 헌법의 글귀로는 그렇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6월 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앞에서 작업복을 입은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13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2015년 5월29일 구미 아사히글라스의 하청업체에서 9년간 최저임금을 받던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한 달 뒤 노조 가입에 관계없이 그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들이 계약해지됐다. 17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났다. 대한민국의 간접고용 노동자 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넘쳐나는 수만큼 위험업무는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언론에서 접하는 노동재해 피해자는 모두 간접고용 노동자다. 2013년 여수 화학공장, 2014년 당진 현대제철 공장 사망, 2015년 이천 반도체공장 사망, 울산 화학공장 폭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사망사고의 피해자는 모두 아사히글라스의 하청노동자와 같이 간접고용된 노동자다.

노동조합 할 수 있는 권리조차 없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보다 안전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대접을 받으려면 노동조합 활동이 온전히 보장돼야 한다.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이 바로 원청 사용자에 대한 교섭권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어딘가의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이야기를 나눌지 모른다.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 3권으로 원청에 맞서 힘든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하루빨리 제도 개선을 통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할 권리를 보장하자.

차헌호 |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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