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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존경하던 사회운동가와 복지국가 문제를 토론하던 중 그가 ‘남북 문제 해결 없는 복지국가는 허구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정치에서 ‘무엇이 없는 무엇은 허구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연결돼 있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칼로 두부를 썰 듯 명쾌하지 않다. 때론 어쩔 수 없이 중요한 문제를 후순위로 하고 당장 손에 잡히는 문제부터 다룰 수밖에 없는 때도 있다. 같은 의미로 복지국가로 가는 정책대안은 사회갈등의 다른 분야보다 우선될 수도 있다. 진보나 보수와 같은 이념적 지향 또는 어떤 대단한 정책대안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훨씬 복잡하고 거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 역시 지난 총선부터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담론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관점과 상반된 태도를 가지게 된다. 어느 순간 입에서 ‘노동 없는 경제민주화가 무슨 의미인가?’와 같은 불만이 불쑥 튀어나온다. ‘경제민주화’라고 얘기되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개혁방향이 현재를 살아가는 다수 시민들의 삶과 유리된 채 추상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요한 정치지도자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는 경제민주화의 내용 대부분은 정부와 재벌대기업의 관계를 말한다. 헌법 조항에 근거해 정부가 재벌대기업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시장을 조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진보와 보수, 여·야당은 각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강도의 차이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그러나 경제를 민주화한다는 것이 과연 정부와 재벌 사이의 권력관계 변화를 말하거나 나아가 갑과 을의 관계가 더 민주적이 될 것이라는 수준에서만 논의되는 것이 적절한가.

직장폐쇄를 단행한 충남 아산시 탕정면 자동차 공조시스템 부품제조업체인 갑을오토텍 공장 앞에서 8월 1일 사측이 고용한 용역경비 인력과 이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철문을 닫고 막아선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민주주의란 ‘1인 1표’라는 정치적 평등에 기초한 시민들이 직접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불평등을 조정·통치해가는 제도다. 이 때문에 ‘1원 1표’의 성격을 가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늘 긴장관계에 놓인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경제’를 ‘민주화’한다는 경제민주화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1인 1표’의 담지자인 주권자, 시민과 같은 민주주의의 주체는 누구인지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거창한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경제민주주의의 주권자는 누구인가. 결국 그들은 일하는 시민인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1987년 이후 한국 정치가 민주화됐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직선제 개헌을 통해 대통령을 직접 투표로 선출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결사와 표현의 자유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경제가 민주화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치가 민주화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경영에 참여시키고 동등한 생산의 주체로 인정받는 것, 노동조합의 활동이 더 이상 불온한 무엇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근간임을 인정하는 것, 그들의 주장과 요구가 이기적이거나 무리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결사와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주권자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로 인정받는 것이다. 시민에게 스스로를 대표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을 때 정치의 민주화라 할 수 없듯 노동자들이 경제의 주권자로 인정되지 못할 때 우리는 이를 경제민주화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작년에 남편 회사에는 입에 담기도 끔찍했던 악몽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남편과 동료들이 속해 있는 노동조합을 없애고 회사와 마음 잘 맞는 다른 제2의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전직 경찰과 특전사 출신 등의 용역 깡패들을 고용해 공장에서 일하는 아빠들을 집단폭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과 남편의 바람은 오로지 자신의 일터를 행복하고 일한 만큼 정당하게 대우받는 일터로 만들겠다는 것뿐입니다. 이제 갓 입사한 젊은이에게 자신이 겪은 비인간적인 대우와 불공정한 처사를 돌려주고 싶지 않은 것뿐입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이 소망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100일이 넘도록 노사 간 첨예한 갈등이 해결되고 있지 않은 충남 아산의 ‘갑을오토텍’ 노동조합 조합원의 가족이 쓴 글이다. 경제민주화가 이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그리고 가족들이 처한 삶의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절박한 목소리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대한민국 경제의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본질이어야 한다. 히치콕은 서스펜스 영화의 초반에 매우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엔딩에서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속임수와 같은 영화적 기법을 ‘맥거핀’이라 불렀다. 어쩌면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비롯해 최근에 유력 정치인들이 내놓는 새롭다는 경제담론들도 우리 정치의 거대한 ‘맥거핀’은 아닐까?

조성주 정치발전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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