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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가 급하게 사무실을 정리하느라 버리고 간 PC, 그 안에서 발견된 파일들 속에서 박근혜 정부의 새빨간 거짓말이 들통나고 말았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국기문란… 그동안에도 이런 폭로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오히려 “문건 유출이 범죄”라며 엉뚱한 쪽으로 논란을 몰고 가 곤경을 벗어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문건 유출자가 바로 대통령 자신이라는 점에서 외통수에 걸린 셈이다.

파일이 공개된 지 단 하루 만에 대통령 하야와 탄핵, 내각 총사퇴가 거론되는 상황으로 발전될 만큼 최순실 게이트의 파워가 메가톤급이란 얘기일까? 버려진 PC에서 발견된 파일 몇 개가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박근혜 체제를 위협에 빠뜨린 걸까? 최근 몇 달을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우선 박근혜 정부는 317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끝내 운명하신 백남기 농민의 사체를 강제로 부검하겠다며 공권력을 남용해 왔다. 경찰의 직사 물대포에 맞은 것이 사인임이 분명한 데도, 갑자기 ‘빨간 우의’를 등장시키며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 폐기했다던 경찰 속보가 속속 공개되면서 정부의 거짓말이 드러났고, ‘외상성 경막하출혈’이라는 어려운 의료용어가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를 정도로 국민들은 관심을 표명했으며, 부검이라는 행위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짓을 입증하기 위함임이 분명해졌다.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해 304명을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설치된 세월호 특조위에, 박근혜 정부는 예산은 물론이고 권한도 주지 않으며 진상규명 활동을 무력화시켰고, 끝내 지난 9월30일에 특조위 활동 강제 종료를 통보했다. 청해진해운을 비롯한 자본의 탐욕,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력, 참사를 낳은 원인들 어느 것 하나 책임을 묻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박근혜 정부는 청년을 위한 노동개혁이라며 지난해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강제로 도입한 데 이어 올해에는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청년 고용이 늘기는커녕 청년 실업은 신기록을 갱신하며 정부의 거짓말을 증명해주고 있다.

수백만에 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인상은 고작 440원, 그나마도 노동자위원 퇴장 속에 사용자위원·공익위원의 일방통행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려야 한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9000원 효과를 내겠다”던 약속도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은 최저임금 심의 파행 책임을 져야 할 박준성 최저임금위원장을 중앙노동위원장에 내정하며 노사관계 파행을 예고한 상황이다.

한때 세계 1위를 구가하며 한국 제조업의 자랑으로 여겨지던 조선업에서 2014년 이후에만 무려 6만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든 책임은 재벌을 비롯한 자본가들에게 있음에도 노동자들만 고통을 전담한 셈이다. 정부는 뒤늦게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선정했지만, 죄다 노동자가 아니라 원·하청업체 사장들을 지원하는 것일 뿐이었다. 보름이 멀다 하고 터지는 사망사고, 그리고 대량해고를 당하고 있는 하청노동자를 위한 대책이라고 정부가 내놓은 것들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죄다 실효성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이렇듯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와 국민을 적으로 돌리며 벌인 수많은 전투가 진행되며 민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그 정점에서 터진 사건이 바로 최순실 게이트였다. 반대로 말하면 박근혜 정부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와 국민들은 곳곳에서 전선을 설치하며 저항했고, 견고해 보이던 정부의 보호막 중 가장 약한 고리가 제일 먼저 끊어진 것이다.

즉, 지금 형성되고 있는 탄핵이나 하야 여론은 단순히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때문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거짓말과 실정 전반에서 비롯된 것이다. 99도까지 끓어오른 물에 최순실 게이트는 1도를 더한 것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맞서 민주주의와 생존권, 안전할 권리와 노동기본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끊어진 고리의 틈을 비집고 백남기 농민·세월호·노동개악·최저임금·비정규직·구조조정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끊어진 고리의 키워드인 ‘국정농단’ ‘비선실세’ 문제에만 집착해서는 그 어떤 것도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끊어진 약한 고리 사이로 노동자 서민의 요구가 분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고리를 땜질하는 방식의 처방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거짓말이 탄로 나면서 이제 박근혜 정부가 내놓는 그 어떤 말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누구의 말을 신뢰해야 할까? 내년 대선만 바라보며 권력 쟁탈전에 여념이 없는 야당의 말이 미더울까? 어찌 보면 최순실이라는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서 어떤 세력이 가장 신뢰를 얻느냐에 따라 향후 정국 주도권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그럼 곳곳에서 저항을 조직해온 노동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구조조정 앞에 놓인 조선업 노동자들은 지금이야말로 원·하청 노동자들의 굳센 단결로 하청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분사·하청화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의 결단을 내린다면? 철도 파업에 무책임하게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철도공사와 정권에 맞서 노동자·시민의 안전할 권리를 위해선 이 정부에 운전대를 맡겨선 안된다는 선언과 실천이 뒤따른다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확장을 위해 조직된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철폐 운동의 주역이 되겠노라고 진출한다면? 6월 민주화 항쟁이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진 1987년 역사가 그 결과를 미리 보여준 바 있지 않던가.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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