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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곡(還穀)의 출납을 수령이 제멋대로 하는 데에서 온갖 간사한 짓이 나온다. 이는 백성을 위한 제도인데 정작 그로 인해서 가장 곤욕을 받는 이들이 백성이고, 수령들은 오히려 이를 치적으로 삼는다. 그대는 마을을 잠행할 때 먼저 장부의 허위 기재 여부와 입출의 공정성을 세세히 살피고 나서, 출두 이후 창고의 곡물을 낱낱이 대조 확인하여 가감 없이 보고하라.
1787년 정조가 황해도, 평안도에 파견한 암행어사 이곤수에게 내린 봉서(封書)의 일부다. 조선시대에는 사헌부에 감찰(監察)을 두어 관리들의 비위를 살피고 회계 감사 등을 담당하게 하였다. 때로는 지방관의 비위를 조사하기 위해 감찰어사를 파견하기도 했는데, 후에 이 임무를 비밀리에 담당하게 된 것이 바로 암행어사다. 감찰 대상은 관리들이었다. 오늘날에도 감찰은 공무원의 위법 행위를 조사하고 징계 처분을 내리거나 수사 기관에 고발하는 역할 혹은 조직을 지칭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감찰하세요! 사찰하지 마시고.” 얼마 전 종영된 한 드라마에서, 과잉 진압으로 문제가 된 동료 순경의 사생활을 캐묻는 감찰반에게 같은 지구대 소속 순경이 던진 말이다. 감찰과 사찰의 차이는 무엇일까. 감찰은 합법이지만 사찰은 무조건 불법이라고 여기는 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사상적인 동태를 조사하고 처리하는 일을 주로 맡아왔던 점 때문에 부정적으로 사용되곤 하지만, 사찰(査察) 역시 경찰의 고유 직분이었다. 문제는 그 대상이 공직자인가 민간인인가, 방식이 적법인가 불법인가에 있다.
어떤 사찰이 직무범위 내에서 정상적이고 필수불가결하게 이루어졌는지 가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국군 기무사령부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조직적으로 사찰하고, 대법원장이 변호사협회 회장의 개인사를 사찰하는 일이 과연 적절했는지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기소 사유는, 국가정보원을 동원해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을 불법 사찰한 혐의다. 당시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우병우 수석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던 중이었다. 특별감찰관제는 대통령 측근의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되었다. 그 임무에 충실한 감찰관을 사찰하여 옷을 벗기고야 만 것이다. 감찰마저 사찰로 누를 수 있다고 여긴, 농단의 민낯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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