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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넘쳐나고 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선출될 자리가 4000여개. 등록한 후보는 9300여명에 이른다. 이 모든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과 포스터, 현수막의 문구들, 연일 이어지는 거리 유세와 방송 토론 등에서 수많은 말들이 쏟아진다. 그들이 자신 있게 던지는 희망의 말들만 하나하나 듣노라면 우리 지역의 앞에 펼쳐진 꽃길의 향기에 취해 아찔할 정도다. 그러나 함께 터져 나오는 서로를 향한 부정과 비방의 말들이 다시금 귓전을 어지럽히며 우리를 흔든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말만으로 정치인을 판단할 수는 없다. 각종 정보와 이력, 공약의 실현 가능성, 윤리의식 등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의 말은 여전히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판단 근거이다. 아무리 세련된 홍보팀을 거느리고 있다 해도, 부각하고자 하는 초점과 무심코 내뱉는 언사에서 그 사람의 가치관과 식견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말을 판단할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먼 옛날 순자(荀子)가 제시한 기준을 소박하게 떠올려 본다. 훌륭한 이의 말은 포괄적으로 언급하면서도 디테일에 충실하다. 겸손하게 제시하는데 조리가 정연하다. 다듬지 않고 말하는데 듣다보면 가지런히 정리된다. 실질에 부합하는 올바른 명칭과 핵심을 드러내는 타당한 표현으로 비전을 밝히는 데에만 힘쓸 뿐, 구차하게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 반면 어리석은 이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말하는데 그마저도 허술하다. 핏대를 세워 거칠게 따지고 들지만 조리는 없다. 끊임없이 말을 해대는데 도무지 정리가 안된다. 거창한 명칭으로 이목을 끌고 현란한 표현을 일삼곤 하지만, 정작 깊이 있는 비전은 없다. 바닥을 드러내는 데도 핵심은 보이지 않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과욕을 부려 보지만 아무런 실효도 명성도 얻지 못한다. 훌륭한 말은 쉽고 명료하며 안정감이 있지만, 어리석은 말은 그와 반대다.
내일모레면 등록 없이도 사전투표소 어디서나 투표가 가능하다. 투표하지 못할 핑계를 대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일곱 장 이상의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지역의 후보자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미리 찬찬히 살필 일이다. 정치는 말에서 드러나고, 삶은 정치로 좌우된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