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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때 이종영이라는 인물이 부령의 도호부사로 발령 받았다. 부령은 함경도 마천령 이북,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있다. 서울에서 2000리나 떨어져 있고 함경도 감사의 관아에서도 1000리나 떨어져 있다. 험준하고 궁벽한 땅이지만 그런 만큼 모든 것을 수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진귀한 산삼과 짐승 가죽을 불법으로 갹출하여 탐욕을 채우고 권세가에게 진상할 수 있으며, 감찰 기관이나 조정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극심한 착취에 시달리지만 하소연할 길조차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약용은 이종영의 부친인 이재의와 오랜 벗이었다. 새로운 관직을 받고 먼 길 떠나는 친구 아들을 위해서 정약용은 전송의 글을 써 주었는데, 그 첫머리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이 두려워해야 할 네 가지를 제시했다. 백성과 감찰기관, 조정, 그리고 하늘이다. 대부분의 관원들은 감찰기관과 조정만 두려워할 뿐, 백성과 하늘을 두려워할 줄은 모른다. 감찰기관과 조정이 먼 곳의 모든 관원들까지 제대로 관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그들을 속이기는 쉽다. 그러나 백성과 하늘은 늘 목민관의 가까이에 있으므로 속일 수 없다. 목민관의 잘못된 처사와 태도 하나하나에 백성은 그저 원망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백성의 원망이 바로 하늘의 원망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그냥 우리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는 정도의 두려움이 아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그런 정도의 두려움이다.” 지난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때 대통령이 모두에 한 말이다. ‘두려움’을 강조하며 대통령이 보좌관과 내각에 주문한 세 가지는 유능함과 도덕성, 그리고 겸손한 태도였다.

행위를 의롭게 함으로써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을 자신도 두려워하는 것이 두려움의 출발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면 상황과 기준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정약용이 권고한 두려움은, 마음을 올곧게 함으로써 남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까지도 자신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진정한 유능함과 도덕성, 겸손함은 그런 본질이 없이는 나올 수 없다. 대통령이 엄중하게 언급한 두려움의 무게가 얼마나 제대로 구현될지, 유권자 모두가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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