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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인 4월22일은 ‘지구의날’이다. 지구의날은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발생한 해상기름 유출사고를 계기로 1970년에 미국 위스콘신주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이 주창했다고 한다. 첫해에는 하버드대생 데니스 헤이즈가 앞장서 주도했던 지구의날 기념 행사에 미국인 2000만명이 참석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 첫해의 기념행사는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유엔 인간환경회의’ 개최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환경이슈가 커지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그 후 20년 가까이 개최되지 못했다.

1990년에 이르러 제2차 기념행사가 열리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그해에 우리나라에서도 가톨릭 단체와 민간환경단체들이 기념행사를 개최했는데, 최근에 와서는 지방자치단체들도 기념행사에 나서고 있다. 요즘에야 ‘지구의날’ 행사를 개최한다고 해서 누가 반대하는 일도 없고, 별로 관심받는 화제가 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념일이 퇴색될 정도로 환경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를 초래할 정도로 생태위기가 심각해졌다는 지적과 이와 관련된 정보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지질학적으로 신생대 제4기 홀로세(마지막 빙하기 후)를 대체해서 ‘인류세(Anthropocene)’라 부르자는 제안을 했다 한다. 인류가 지구의 전 범위에 걸쳐 끼친 영향은 지구의 변형을 초래한 지질학적 변화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류세는 지질학의 공식용어로 채택할 것인지가 검토될 정도로 상당히 일반화된 개념어로 통용되고 있다.

홀로세는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고 인간이 지구환경을 바꾸는 농경생활이 시작된 시기이다. 자연스럽게 간다면 5만년은 더 존속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결정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를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가 시작된 시기로 보고, 이 시기는 닭이 대규모로 사육되기 시작한 때여서 인류세의 표준화석은 닭뼈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방사성물질, 플라스틱, 알루미늄, 콘크리트 등 ‘기술화석(technofossils)’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물질이 퇴적층에 쌓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며 대규모 쓰레기매립장이 전 지구적으로 나타난 시기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로 해수면의 높이도 크게 상승했으며, 탄소, 질소, 인 순환에 변동이 일어났다. 그 속도가 사상 유례없이 빠른 것도 특징이다. 기후변화도 지구 평균온도가 섭씨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는 선에서 막아보자는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인데, 그 선을 넘어가면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구의날이 처음 제정된 1970년 무렵은 1962년에 살충제 DDT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간된 이후여서 이 문명이 초래할 생태파괴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기 시작한 때였다. 특히 첫해의 지구의날 기념행사가 사상 최대 규모로 번진 배경에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과 68혁명, 히피 등의 반문명운동이 전반적으로 거대한 흐름을 이룬 시대였던 데에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현재의 과학계 논의대로라면, 인류세가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돌이켜 보면, 지난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류세로 지칭되는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는 심화되고 있다. 2015년에 이르러 유엔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한 것과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지난 시기에 꾸준히 이어져온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난 시기에 대규모 반문명적 저항이 있었던 분위기에 비해보면, 인류세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해진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처방안으로서는 매우 미약하고 미흡하다는 실감이 든다.

산업문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석유를 발견해서 석유화학제품을 사용하게 된 것이 번영을 가져온 결정적인 원인이었고, 석유는 지구상의 생명이 죽어 땅속에 축적된 것이니, 결국 지구 안에서 지구 덕분에 우리가 잘 사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동의 집 지구에 초래한 위기에 둔감해진 원인은 지구와 뭇 생명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더 주의하고 절제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지구중력에 적응진화한 인간의 몸을 무중력상태에 유지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의 옷을 입혀 우주로 띄워보내며 우주여행과 화성이주를 거론하는 시대이다. 인간의 위대하고 놀라운 도전능력이 무엇이든 다 해결해온 만큼 지구에 대해 특별히 겸손할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태도 안에는 세계를 움직여가는 인간의 생각이 있는데, 지구와 우주를 물질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태위기에 대한 처방도 물질에 대한 관리와 조절통제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지구에 대한 감사와 겸손이란 것은 이러한 세계관 안에서는 들어설 자리가 없기에 생태위기에 대한 해법을 논의한다는 것은 항상 주변적이며 다양한 위기 중의 한가지로 인식될 뿐, 생각의 근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함정이라는 각성이 어려워진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기 전에 삶을 가능하게 하고 풍부한 자원을 제공하여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지구가 단순한 물질로 지워져버린 산업문명시대의 왜곡된 세계관을 대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찰과 각성이 수반된 균형 잡힌 체계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만 아마도 대전환의 어떤 계기가 주어져야 가능할 것 같다. 스스로를 지구학자로 자처했던 토머스 베리(1914~2009)는 “공포와 매혹”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를 다른 문명으로 추동하는 힘은 공포스러운 상황을 면하려는 것이든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선택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생활패턴이 주어질 때에 작용할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산업문명도 “공포와 매혹”의 두 측면을 지니고 있다. 현재로서는 환경 문제나 빈곤 문제와 차별 등 어두운 측면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이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자 하는 매혹이 훨씬 더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심리와 그것이 반영된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날이 머지않아 다가올 수도 있다.

<강금실 | 법무법인 원 변호사·포럼 지구와사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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