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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말부터 발생한 재활용품 수거 거부 사태, 일명 ‘폐비닐 대란’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재활용’에 대한 언급이 보통 1일 500건에서 지난 4일에는 4211건으로 급상승했다. 관련 게시글은 충격, 부담, 혼란 등이 대부분이었다.

환경부가 회수선별 및 재활용 사업자들을 만나 폐비닐 등 수거 거부의 급한 불을 껐지만 일부 아파트단지와 재활용업체는 타협점을 찾지 못해 지자체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동안 이물질이 혼입된 폐비닐을 비용을 들여 재활용한 업체들이 판로도 줄어들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5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 재활용 쓰레기 선별업체에서 직원들이 수거 차량에서 쏟아져 컨베이어벨트로 넘어오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골라내고 있다. 이상훈 기자

폐기물은 쓰레기와 자원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매립장에 그냥 묻으면 쓰레기이지만, 재활용할 경우 좋은 자원으로 재탄생한다.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폐기물 발생량 1억5000만t 중 매립되는 것은 1278만t, 소각되는 것은 880만t이다.

그러나 매립지 평균 수명이 10년밖에 남지 않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매립지 용량을 확보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매립지를 새로 건설하거나, 매립지로 들어가는 폐기물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새로운 매립장 확보는 님비(NIMBY) 현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지속가능한 쓰레기 관리를 위해서는 매립 대상을 줄여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협소한 국토여건과 주민 반발에 따른 매립부지 확보난 등으로 소각시설 확대 정책을 추진해왔다. 근래 들어와서는 폐자원 에너지화 정책도 추진해왔다. 일부 지자체는 종량제 봉투에서 회수한 필름류를 대상으로 고형연료(SRF) 사업도 시행했지만, 고형연료 발전시설 설치에 대한 민원 발생과 수요처 미확보, 고비용 등으로 오히려 지자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주민들이 보기에는 폐비닐이 주성분인 고형연료가 소각장에서 태우는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고형연료의 품질이 문제였다.

생활계 폐기물은 분리수거된 것 중 물질재활용에서 제외된 저급 폐비닐이 대부분이지만, 사업장계 폐기물은 사업장에서 배출된 폐기물 중 폐플라스틱, 폐섬유, 폐고무, 기타 가연성 폐기물로 가공된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품질이 조악한 편이다.

폐자원 에너지화 촉진시책으로 생활계와 사업장계가 구분 없이 사용된 것이 고형연료에 대한 이미지를 악화시켰다. 물질재활용 혹은 고형연료로 사용하려 해도 배출 단계에서 깨끗하게 분리배출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비용이다. 기존 폐기물 재활용시설들은 플랜트 사업 위주로 보통 수백억원의 설치비가 투입되어 정부의 재정 부담을 초래하였다.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고자 선진국의 폐기물 재활용기술을 도입하여 운영하였으나,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아 고비용을 들여 운영하고 있는 실태이다. 하루빨리 저비용·고효율의 이물질 선별기술 및 재활용시스템이 개발·보급되어야 한다.

정부는 국내 폐기물 형상에 맞는 새로운 이물질 선별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R&D 사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인구 100만명, 50만명, 30만명, 10만명, 5만명 도시 등 지역별 상황에 맞는 한국형 재활용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필자는 선별 후 이물질 때문에 쓰레기로 버려야 했던 재활용 잔재물을 고품질 자원으로 선별하는 한국형 전처리선별시설이 업계에서 개발돼 시범 설치 운영되고 있는 현장을 둘러보았다. 이물질이 혼입된 폐비닐이 새로운 선별기술을 통해 수분과 이물질을 털어내어 물질재활용업체의 고품질 원료로 납품되고 있었다. 덕분에 회수선별 사업자는 사업장 폐기물로 분류된 잔재폐기물 처리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물질재활용업체는 고품질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 폐비닐 대란은 긴급대책으로 해결되겠지만 중장기적 대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신중하게 세워야 한다. 소비자, 생산자, 재활용 사업자, 지자체와 정부가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쓰레기 발생부터 재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의 허리를 튼튼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최주섭 자원순환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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