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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봄날, 국내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그린보트가 닻을 올렸다. 그동안 환경재단은 일본의 피스보트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1100명의 한·일 승객을 ‘피스&그린보트’에 태워왔다. 올해부터는 환경재단 단독으로 1600여명을 태운 ‘그린보트’ 항해를 시작했으나 그동안 일본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던 ‘평화’ 부분을 놓지 않았다. 평화란 결국 현 세대가 후손들에게 어떤 환경을 물려줄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한 끝에 이뤄지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여정에서 들른 기항지는 총 세 곳이다. 조선사람 ‘카레이스키’가 거주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윤봉길 의사가 생애 마지막을 보낸 일본 가나자와, 마지막으로 유엔인간정주계획(UN-HABITAT)과 함께 지속가능한 도시(폐기물 관리 분야)로 주목받는 후쿠오카. 이같이 환경재단이 준비한 크루즈 여행은 일반적인 관광 패키지 상품과는 다르다. 그린보트는 문화적인 접근 방식과 전문성을 통해 환경과 평화의 가치를 알리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기항지뿐만 아니라 더 건강한, 더 즐거운, 더 새로운 지구라는 주제에 맞춰 각 분야의 전문가를 섭외하고 6박7일간 다채로운 강연을 망망대해에서 제공한다. 승객은 객실로 배달되는 빽빽한 강연 시간표에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할지 행복한 고민에 싸인다.

그린보트에서 주어진 업무 특성상, 다국적 출신 선원들과 줄곧 소통해왔다. 이들은 그동안 카지노와 엔터테인먼트 공연 열기가 가득했던 공간이 승객들이 노트에 필기하고 토론하는 교육의 장으로 바뀐 것에 대해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눈물을 흘리는 승객을 보며 이게 무슨 일인지 물어왔다.

그린보트는 대한민국의 아픔으로 남게 된 4·16 세월호 참사를 바다 위에서 기억하고자 했다. 2018년은 그 후 네 번째의 봄을 맞이했고, 승객들은 낭독회와 추모 콘서트를 통해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을 추모했다. 많은 사람들이 먹먹해하며, 배에서 육지로 동시대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린보트는 양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서울 1000여개의 학교 중 환경교육을 하는 곳은 단 한 곳밖에 없다. 현 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은 시민단체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고, 그린보트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환경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그 취지에 공감한 기업들이 사회적 공헌 차원에서 어린 새싹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또한 기업은 임직원을 인솔교사로 파견 보내 임직원과 학생 간에 멘토링이 이뤄졌다. 이 같은 사회공헌 활동의 확산은 지속돼야 한다.

그린보트는 질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 그린보트란 공간에서 음식 낭비 행위에 대해 그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 점은 차치하더라도, 대형 크루즈에서 환경 가치를 설파하는 모순된 상황과 그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 그린보트가 안고 가며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다. 단독으로 시작한 그린보트가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그럼에도 탑승객들은 시민단체인 환경재단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간 대형 사업으로 입지를 굳혀온 환경재단은 시간이 흘러도 시민단체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주영 | 환경재단 선임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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