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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은 올해 진짜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 집 울타리 대밭이 있는데 매서운 북풍 한풍을 양팔 벌려 막아주고 있다. 고스란히 그 바람을 맞고 선 어리고 순한 대나무. 얼마나 춥고 아플까. 또 있다. 밤이면 고갤 떨구고서 발밑을 따뜻하고 환히 밝혀주는 외등. 그늘진 곁을 항상 지켜주고 돌봐주는 이런 존재들에 무한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도 같은 혈육이라고 ‘분단과 휴전’ 중임에도 올림픽 잔치에 함께해준 북녘 동포들. 어찌 보면 영화 속 동막골 한 장면 같지 않은가. 영화 <웰 컴 투 동막골>을 기억한다. 불발인 줄 알고 수류탄을 옥수수가 꽉 찬 헛간에다 던졌는데 순식간 펑! 하늘에서 쏟아지던 무수한 팝콘. 불꽃놀이처럼, 함박눈처럼 내리던 그 팝콘. 살지고 미끈한 송사리 떼가 개울을 헤엄쳐가듯 올림픽 선수들이 날쌔게 달려가는 자리마다 팝콘이 쏟아지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강원도에선 옥수수를 옥시기라고 부른다. 강원도 사투리에서 반드시 앞장을 서는 말이 ‘요’란 말. 요 옥시기, 요 막국시, 요 깔뚝국시(메밀국수), 요 도루매기(도루묵), 요 뜨데기국(수제비), 요 맨두(만두), 요 강쟁이(튀밥), 요 칠구랭이(칡), 요 쌔미(상추쌈), 요 마마꾸(민들레), 요 꿀밤(도토리), 요 감재(감자), 요 해자오라기(해바라기)….

강원도 사투리가 하고 싶으면 ‘요’라는 첫마디만 꺼내면 된다. 캐나다·미국에서 온 친구, 러시아에서 온 친구, 멀리 남미에서 온 친구한테도 요를 가르쳐주길. 요 올림픽. 고라댕이(산골짝) 너와집마다 건강하고 예쁘장한 요 해까이(어린이), 요 아주버이, 요 아주머이, 요 할머이, 요 할부지, 재미지게 오순도순 살고 있는 강원도땅. 설피를 신고 설산을 오르다보면 멀리 보이는 설악산 금강산. 겨울에 금강산은 개골산이라 불린다지. 수천수만 번 들었던 노래 그리운 금강산. 눈두덩 말라붙은 눈물로도 모자란 그리움이렷다. 눈 내리는 ‘요 밤’, 강원도 옥수수 팝콘이라 생각하고 입을 쩍 벌려본다. 가문 땅에 내리는 평화와 생명의 은총. 아무리 추워도 감사해 지분지분 눈물부터 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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