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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달구는 사안들은 주로 형사처벌에 관한 것이다. 특히 20만명이 넘는 누리꾼들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목숨을 빼앗아간 끔찍한 범죄 뉴스를 보면서 자신이 피해자가 된 것 같은 동질감과 동정심이 든 사람들은 범죄자를 응징해야 한다며 분노한다. 응당 같은 값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안감 때문에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오래도록 격리시키길 원한다. 그래서 여전히 사형제를 찬성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응징과 보복의 감정에 기댄 것이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소년법을 폐지해 성인처럼 처벌하라고 한다. 곧 형기를 마치게 될 조두순을 더 가두어달라는 청원도 수십만을 넘었다.

중형으로 겁을 주어야 일벌백계가 되고, 잠재적 범죄자가 범죄로부터의 유혹에서 벗어날 것이라 믿는다. 대통령도 최근 음주운전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 특성상 초범이라도 처벌을 강화하고 사후 교육시간을 늘리는 등 재범방지를 위한 대책을 주문했다. 더 엄하고 중한 형벌에 대한 여론, 언론, 정치의 요구가 빗발친다.

왜 엄벌과 강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일까. 흉악 범죄로부터의 불안감 때문이다. 자연재난, 질병, 대형 교통사고, 산업재해의 위험에 더해 급증하는 범죄위험은 평화로움을 원하는 시민을 불안하게 한다. 사건보도를 접하는 국민들은 자신은 절대 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다양한 안전장치들을 요구한다. 범죄수법에 관한 선정적 보도에 더해 범죄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가감 없이 노출시키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응징 욕구는 치솟는다. 범죄자를 사회에서 배제해야 할 악마와 적으로 낙인찍는다. 잔혹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강력한 통제수단으로 여기는 형벌에 거는 기대는 커진다.

이럴 때 정치는 돈이 적게 드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신속하게 뭔가 하고 있음을 유권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인기영합주의가 발동돼 입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여론에 즉각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는다. 정치는 강성화 형사정책을 사회통제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범죄에 대한 시민의 두려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법은 날로 비대화되지만 역으로 과잉범죄화가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기도 한다. 입법자뿐만 아니라 국민들은 어떤 금지행위든 형사처벌 규정을 두어야 실효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유해하거나 반사회적인 행위까지 형벌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만연하다. 경범죄 처벌, 자전거 음주운전, 자전거 헬멧 미착용, 자동차 안전벨트 미착용이나 심지어 부동산 투기행위에 대해서도 형사제재의 수단을 투입하려고 한다.

정치권과 입법부가 여론의 풍향에 너무 민감하다. 조문 몇 개만 고치는 단발성 입법 발의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의 폭풍만 지나가면 그 법이 잘 집행되고 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일단 입법자로서 할 일을 다 했으니 끝이다. 그러는 사이 법은 서서히 생명력을 잃고 법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다. 형사처벌법을 만드는 것에 그치면 그것만으로 범죄가 예방될 리 없다. 처벌법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법이 때와 장소를 가리고 누구에게 적용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면 법에 대한 신뢰는 사라진다. 항시성과 일관성, 그리고 공정성이 핵심이다. 어쩌다 단속해서 처벌하거나, 처벌도 들쭉날쭉하면 법에 대한 불신만 생겨 준법의식은 옅어진다.

성범죄의 예를 보자. 1990년대 중반부터 특별법 제정, 형법 개정, 신상공개 및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 등 처벌수단을 강화하고 다양화하는 등 중형주의의 연속이었다.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법정형도 강화하고 제재수단을 총망라했지만 성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고 있다. 범죄자를 가두어 두는 형사정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슈가 되고 있는 음주를 포함한 위험운전치사상죄도 그렇다.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지만 10년 전에도 그랬다.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사망자의 수가 증가하자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위험운전치사상죄를 신설했다. 음주운전 사고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느슨하게 적용되니까 오히려 음주운전 사고는 증가추세다. 엄격한 단속과 법적용 및 처벌이 뒤따라야 처벌법의 효과가 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그래야 학습효과가 나타난다. 단속, 수사, 처벌이라는 법집행이 총체적으로 제대로 돌아가야 규범의식과 준법의식이 생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법대로 살면 나만 손해’ 등 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법을 제정하여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입법의 홍수만 겪게 될 뿐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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