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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재벌 총수를 ‘오너’(owner)라 부른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그 설립자와 일가들이 회사의 주인이자 소유주라는 의미다. 설립자의 개인능력 덕분에 성공했으므로 오너가 되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자수성가의 신화가 회사를 자기소유, 개인재산으로 여기게 한다. 자기가 키운 회사라는 생각에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자녀에게 물려준다. 사유재산인 보유 지분뿐만 아니라 경영권까지 상속하려 한다. 경영권은 사유물이 아닌데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지 않는 오너의 잘못된 인식이 가족경영과 경영권세습을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 이제 재벌 상속과 경영권 대물림이 우리 기업의 독특한 관행이 되었다. 내 것이라는 생각에 권위주의적 오너가 되고 수직적 기업문화가 지배한다.

세습자본주의의 민낯이 오너의 갑질 행태로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회사는 보통 주식회사이므로 설립자이자 경영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원도 있고 주주도 있다. 아무리 1인 주주의 1인 회사라 하더라도 주주와 회사는 구분된다. 주주와 회사는 별개의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는 낮은 지분율로 회사를 지배하는 설립자와 그 일가가 아니라 주주들이 주인이다. 피와 땀이 배어 있다고 재벌총수 일가가 멋대로 할 수 있는 개인재산이 아니다. 국가의 온갖 보호와 특혜로 성장했다는 점에서도 더 이상 개인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 기업 내 민주주의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화두가 되는 이유다. 

5일 오전 참여연대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서울시당 앞에서 유치원 비리근절 3법 통과 촉구 및 자유한국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소위 ‘유치원 3법’ 개정논란에서도 오너십이 쟁점이다.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은 토지와 건물, 시설에 자신들의 재산을 투자했기 때문에 개인의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가가 법을 근거로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에 반한다고도 한다. 학교법인에 재산을 출연한 사립학교와는 달리 개인재산이 제공된 사립유치원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이라는 오너십이 교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해도 위법이 아니라는 억지논리를 만든다. 사립유치원은 학교가 아니며, 학교로 인정하려면 그에 합당한 인건비와 개인 재산을 공공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임대료 등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적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2018년의 유치원법 개정은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과 판박이다. 사학들의 부정부패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유치원비리 근절을 목적으로 한 유치원법 개정논의는 서로 닮았다. 보수야당과 결합한 이익단체의 집단행동 무기가 사유재산권 보장이라는 점도 똑같다. 학교설립자가 개인의 재산으로 학교를 설립했으니 학교는 사실상 설립자의 것이므로 여기에 누구든 개입하는 것은 설립자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사학의 자율성이 무시된다는 논리였다. 폐교와 폐원으로 학부모를 겁박한 장면도 데자뷔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립 구도도 사립학교법 논쟁의 시즌2처럼 보이게 한다. 

법인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이든, 개인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이든 유치원은 사립학교다. 현행법상 사립유치원은 ‘학교’면서 법인이 설립해야 하는 초·중·고·대학과는 달리 개인이 설립할 수 있다. 법인이 아니고 설립자 개인이 운영하더라도 교육관계법령상의 학교이자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법인 사립유치원은 설립인가를 신청할 때 건물과 부지를 출연하여 교육용 재산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 유치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법인 사립유치원 역시 개인이 소유한 건물과 부지를 유치원의 교사·교지의 용도로 지정하고 사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 규제를 받아들이고 인가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사유재산이지만 시·도교육감의 승인, 지도, 감독을 받는다. 감사도 받아야 한다. 사립유치원은 학교이기 때문에 폐원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사립학교가 공교육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국공립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한 범위 안에서 운영을 감독, 통제할 권한과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유치원 교육과정은 학교 교육과정으로 명백한 공교육 과정이다. 그래서 국가의 엄청난 공적재원이 투입된다. 학부모 분담금이 유치원 운영자의 사유재산일 수 없다. 엄연히 교비다. 수입을 교육목적 외 개인 용도로 사용하면 불법이다.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을 내세워 사설 학원화하거나 스스로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사업자로 격하시키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유치원 비리근절 3법은 교육 목적 교비의 사적인 유용을 방지하기 위해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법상 학교에 걸맞은 공공성을 강화하는 개정법률안이다. 국회는 한 해가 가기 전에 충격받은 학부모들이 더 이상 분노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도록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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