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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이 입구를 가로막았다. 까만색 유리문이라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업종을 바꿨을까? 문을 열어 보았다. 갤러리가 맞았다. 작품 수가 기대보다 적었다. 직원에게 다른 공간은 없느냐고 물으니 건물 구조를 그린 종이를 건넨다. 아무리 둘러봐도 통로를 찾을 수 없다. 문밖에 나가도 부속 건물은 없다. 안으로 돌아와 고민을 거듭하다 다시 물었다. 직원이 가리킨 방향에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문이 열리자 식당이 나온다. 어디지? 층수를 잘못 눌렀나? 두리번거리며 식당으로 나오니 다른 갤러리 공간이 비로소 드러났다.”
지인이 어느 갤러리에서 겪은 일을 e메일로 전했다. 갤러리 입구에서 ‘어디 가냐’며 저지를 당한 내 경험에 비하면 별일도 아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림 애호가’가 아니라 ‘그림 도둑’처럼 생겨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농담 반 한다.
갤러리인가? 식당인가? 지인의 에피소드엔 갤러리 공간의 본질에 관한 의문이 담겼다. 갤러리 일반에 관한 여러 함의도 들었다. 그도 나도 성낼 이유가 없다. 갤러리는 미술품을 사고파는 곳이다. 갤러리 대표는 옛말로 화상(畵商)이고, 영어로 딜러(dealer)다. 미술품을 팔아 이윤을 추구한다. 근대 이후 상품 아닌 예술이 어디 있나? 책도, 영화도, 무용도, 연극도 마찬가지다. 갤러리만 상업적인가? 국립미술관에도 재벌이 그 이름을 그대로 달고 스폰서를 한다.
지인은 ‘전시’를 향유하지 못해 화가 났다. 설명도 듣지 못하고, 자료도 받지 못했다. 이것도 갤러리를 탓할 일이 아니다. 갤러리는 그림만 보러 오는 이들을 환대하는 곳이 아니다. 미술관 보도자료와 갤러리 보도자료는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하나 있다. 갤러리 자료엔 ‘관람’이란 말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자 ‘간담회’(懇談會, 정답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라니!) 때 관람을 독려하는 일도 없다. 갤러리 ‘전시’는 컬렉터, 언론이나 미술 관계자들을 위한 것이다. 컬렉터들은 따로 약속을 잡고 와 안내를 받는다. 보도는 스크랩돼 작품 ‘가치’(라고 쓰고 ‘가격’이라 옮긴다)를 높이는 지표가 된다. 어느새 ‘그들만의 리그’에 포섭된다.
지인은 갤러리 전시 기사를 보며 상업공간을 관람공간으로 착각했다. 문화공간처럼 오도된 것이다. 이 부분에서 ‘미술 저널리즘’을 고민한다. 더 확대해 ‘문화 저널리즘’이라고 할 때, 그 작동 방식은 비슷하다. 책이든, 공연이든, 영화든 창작자가 새 창작물을 내놓으면 출판사나 기획사, 영화사는 ‘간담회’를 열고, 마케팅한다. 수용자의 구매 과정에 저널리즘은 비판이든, 호평이든, 정보 전달이든 개입한다. 다만, 미술품은 다른 ‘문화상품’보다 훨씬 비싸다. 대량 복제할 수도, 자주 반복할 수도 없다. 컬렉터만 보는 전문지가 아니라면, 미술 전시 기사에서 중요 기준은 ‘관람’이어야 한다.
갤러리가 ‘관람’에서 미술관을 대신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시장미술’에 집중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미술진흥 중장기계획’을 보면, “대형 화랑들이 경매를 겸업, 독과점에 따른 불공정이 심화”됐다고 나온다. 신진 작가 발굴을 등한시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체부도 전시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누구든 미술품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는 미술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갤러리를 두곤 ‘중저가 미술품 소비·대여 확대’ 같은 목표만 세웠다.
미술을 좋아한다면 갤러리를 외면할 수만은 없다. 한국 거장과 해외 유명 작가들이 종종 갤러리를 통해 ‘소개된다’. ‘좋은 작품’을 볼 기회가 ‘주어진다’. 환대받지 못한들 어떤가? 갤러리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을 이끌어낼 일도 아니다. 갤러리 모두가 ‘관람객’을 냉대하지도 않는다. ‘식당에 딸린 갤러리’ 구조가 아니라 미술관을 지향하는 갤러리도 있다. 그저 관람객에 무심할 뿐이다. 지인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무심히 또 담담히 작품 관람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갤러리로 가는 발걸음을 멈출 필요가 없다.
<김종목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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