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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들어 대한(大寒) 근처를 지나건만 지난여름 땡볕에 상응하는 추위가 없다.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심설산행에 따라나섰을 땐 묵은 눈이라도 실컷 맞으리란 기대가 없지 않았다. 대관령에 도착해서 능경봉으로 오르는데 맞춤하게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에 휩싸인 겨울산에 들면 잎을 떨군 나무의 밑천이 훤히 드러난다.
ⓒ최영민
그리하여 어느 비탈의 우람한 거제수나무 아래에서 이런 시 한 편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황지우)
눈은 계속 내렸다. 애인 만나고 올 때처럼 비가 그냥 한꺼번에 후다닥 내리고 만다면, 애인 만나러 갈 때처럼 눈은 망설이는 눈빛과 설레는 마음을 담고 천천히 흩날린다. 부드러운 혁명처럼 천하가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벌받는 자세의 거제수나무를 보면서 서울을 벗어날 때 귓가에 왕왕거렸던 뉴스와 관련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래전 어느 법률가와 만난 적이 있었다. 법의 문외한으로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이 남긴 한마디가 영영 안 잊혔다. 세상에 죄가 이만큼 있다면, 요만큼 드러나고요, 요만큼 기소가 되고요, 이만큼 재판을 받고요, 겨우 요만큼 벌을 받는 셈입니다. 한 단계마다 반토막으로 좁혀지더니 한 뼘만큼으로 팍, 쪼그라든 그이의 양팔 사이로 빠져나간 이른바 ‘법꾸라지’들이 활개치는 소리가 푸드덕거렸던 기억.
세상의 소리를 빨아들이며 계속 내리는 눈. 하늘은 이렇게 순결한 눈을 보내주는데 발밑에서는 금방 질컥이는 흙탕으로 변해버린다. 잘되기는 어려운데 잘못되기는 왜 이리 쉬운가. 눈 내리는 겨울 대관령에서 만난 거제수나무. 그 수피가 부르튼 입술처럼 얇고 붉게 일어나며 벗겨진다. 어쩐지 누군가를 대신해서 애꿎게 벌서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자꾸 쳐다보는 저 겨울나무들. 거제수나무,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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