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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 고려대 명예교수

근착의 외지 하나에 영국 옥스퍼드대 티모시 가튼 애쉬 교수의 유럽연합의 미래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애쉬 교수는 원래 동유럽 전문가로서 동구 공산권 붕괴 시에 상황의 전개를 설명하는 여러 글들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글들은 보도이면서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유럽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쓰인 분석적인 것들이다. 그는 영국에서는 많지 않은 유럽주의자로서, 전에도 이 문제에 대하여 글들을 발표하였지만, 위에 언급한 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이 약화된 것으로 보이는 유럽의 연립 의식과 그 상황에 대하여 진단을 시도한 것이다. 유럽의 문제도 우리에게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세계화된 오늘의 상황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글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가진 문제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애쉬 교수가 지적하는 것 하나는 어떤 정치공동체를 하나로 유지해 가는 데에는 정치나 경제에 못지않게 문화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공동체에는 공동의 가치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는 이것을 시(詩)라는 말로 요약한다. 시가 있어 공동체는 하나가 된다. 그렇다고 애쉬 교수가 이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일치 또는 이념적 합의를 원하면서도, 이미 이루어져 있는 사실적 합의에 기초하는 것만으로라도, 유럽연합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연합의식이 적극적으로 이야기되지 못하는 것은 유럽에서의 독일의 특수한 위치에 관계된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튼튼한 경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면서 역사의 죄인이다.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데에 독일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리스 등 남부 유럽 나라들은 위기에서 구출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전체적인 영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독일이 위기의 구출에 나선 것도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유로지역의 동시 파산을 피하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 원조를 주기로 하면서 긴축정책을 요구하였을 때, 일부 그리스인들이 메르켈 총리를 히틀러에 비교한 구호와 포스터 등을 들고 나왔던 것은 과거사로 인하여 독일이 떠안게 되는 어려움을 단적으로 예시해준다. 어쨌든 독일은 유럽에서 패권을 쥐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늘 보여주어야 한다. 그 결과의 하나가, 개인적인 인품도 그렇다고 하지만, 메르켈 총리가 견지하는 ‘낮은 목소리의 점진적 실용주의 정책’이다. 그러나 애쉬 교수는 유럽의 통합을 위해서는 이러한 소극적인 정책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경제 그리고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 기구이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유럽인의 마음속에 하나의 유럽이라는 꿈을 살려 나갈 수 있게 하는 시가 없는 것이 그에게는 아쉬운 것이다.


그리스 노동자들이 불에 탄 독일 국기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경향DB)


여기에서 시라고 하는 것은 패권주의 또는 바람몰이를 위한 이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애쉬의 생각으로는 메르켈 이전의 독일 지도자들의 경험과 그것을 넘어서는 이상 또는 이념에는 그러한 시가 들어 있었다.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총리와 같은 사람들은 전쟁이나 홀로코스트 또는 독재 등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일들이 되풀이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여기에 바탕을 둔 유럽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빌리 브란트 총리의 생각과 정책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인용된 브란트 총리의 말에 따르면, 독일인들이 희망하여야 하는 것은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좋은 이웃들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국제 관계에서 실현하고자 한 것이 그의 ‘동방정책’이다. 그는 이 정책의 기치 하에 동독과의 평화적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폴란드와 소련 등과의 화해를 추구하였다.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발걸음의 정책’으로 조금씩 평화 관계를 구성해나가는 것이었다.


애쉬 교수는 그 관심이 주로 유럽연합의 문제에 있기 때문에 국내 문제에는 별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좋은 이웃’의 추구는 브란트 총리의 정부에서 국내 정책에도 그대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복지체제로써 사회적 화해를 다지고자 하였다. 그의 정부에 참여하였던 한 사람의 말로는 그의 재임 중 거의 일주일에 세 건 정도의 복지 법안이 각료회의와 연방의회에서 심의 통과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한 논평자의 평가로는 브란트 집권 후 독일은 세계에서도 가장 선진적인 복지국가가 되었다. 이것은 물론 마음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경제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국내·국외의 화해 정책은 반드시 사회민주주의의 정치 신조만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개혁을 주도한 것은 사회민주당(SDP)이었지만, 이것을 시행한 것은 보다 전통적인 자유주의를 정강의 기본으로 하는 자유민주당(FDP)이 참여한 두 정당의 연립 정부였다.


브란트 총리의 독일과 유럽의 미래를 위한 비전이 시적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중요한 부분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때 이루어진 잘못을 뉘우치는 것에 관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란트 자신은 나치의 등장과 함께 노르웨이 그리고 다시 스웨덴에 망명하고 노르웨이 시민으로서 반파시스트 운동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나치 독일의 범죄에 대하여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과거사 문제에서 독일과 한국은 반대의 입장에 있다. 그러나 브란트 총리를 비롯하여 독일에서 볼 수 있는 철저한 화해의 정신은 우리가 익혀야할 매우 중요한 교훈이라 할 것이다. (그 인간적 성격은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를 방문하였을 때, 바르샤바 의거 기념비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던 사건에서 시적으로 표현된다.)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사죄하는 빌리 브란트 총리 (출처: 경향DB)


한국은 그 국제 관계에서 독일과 같은 반성이 필요 없는 위치에 있다. 또 과거사에 미래의 평화적 비전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제거하는 책임은 한국민이 져야 하는 것일 수 없다. 그렇다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비전에 대한 절실한 필요 그리고 그 설득을 위한 한국의 사명이 사라지거나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시비 정사(正邪)를 가리고 책임을 밝히는 일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그것을 보다 큰 화해와 평화의 틀 안에 위치하게 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인간적 삶의 진실 속에 놓이는 것이 되고 마음 깊이에 공명하는 시적 호소력을 가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화해는 시비를 초월한다. 우리의 근대사에는 이러한 테두리에서 생각되어야 할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인이 겪은 근대사의 다른 큰 재난의 하나는 6·25전쟁이다. 6·25에 대하여서도 책임 소재가 이야기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책임과 정당성의 문제보다도 비극 자체이다. 그러한 비극이 없어야 한다는 깨달음은 어떤 명분으로도 동족상잔(同族相殘)이 옹호될 수 없고, 나아가 폭력 수단 또는 테러 행위에 의한 권력 쟁탈이 허용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의 정치 논의는 주로 정당성의 시비에 집중된다. 그리하여 인간적 고통의 현실에 주의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한 현실 조건의 확보가 정치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시비보다도 중요한 것이 삶의 구체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잊는 것이다.


국제 관계는 조금 더 복잡한 것이겠지만, 우리는 국내 정치에서도 삶의 현실에 대한 유연한 감성을 벗어난 정치 원리주의를 본다. 필요한 것은, 나라 밖에서도 그렇지만, 나라 안에서도 좋은 이웃들이 함께 사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나 경제민주화 또는 복지제도의 확립 등은 단지 추상적인 이념이나 구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고 좋은 이웃으로 사는 데에 필요한 과제를 말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좋은 이웃을 위한 제도적 조건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든지 간에, 오늘날 여러 정당 간에, 기본적인 일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어떤 정당도 국민 또는 국민의 어떤 부분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스스로를 내세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좋은 이웃들’을 확보하는 방법과 속도와 규모, 그리고 그에 필요한 경제적 조건 등의 이해에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번 선거에서 내건 정책들로 미루어 보아도, 그 차이가 근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여야 간에 지속되는 격심한 갈등을 보면 그 원인은 반드시 정책상의 차이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정당 간의 관계는 독일의 사민당, 기독교민주연합, 자유민주당 등이 수시로 연립 내각을 구성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형태의 관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애쉬 교수는 그것이 사라졌음을 애석해 하는 것 같지만, 독일에는 아직도 사회의 기본 방향에 대한 시적(詩的) 일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러 정당이 차이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시적 일치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은 어떻게 해서 가능할 것인가? 추상적인 구호라면 몰라도, 그러한 시가 존재하는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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