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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최선의 정치체제로 받아들인다. (물론 그것이 차선책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러나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형태는 여러 가지이고, 그것은 나라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역사적 상황들로 하여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의 뉴스들에 나오는 사건들은 이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자주 지적되듯이 미국의 의회제도는 대결과 함께 협의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일들로 보건대, 여야 양당 간의 관계는 거의 대결 일변도가 되어 간다. 그렇다고 타협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의료제도를 조금 더 보편화하려는 소위 ‘오바마케어’(저가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시행을 방해하기 위한 전략으로 공화당은 예산안 통과를 지연시키고 정부 기능을 마비 상태에 들어가게 했다. 그러나 결국은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정부를 재가동할 수 있게 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미국 내의 여러 평자들은 예산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경제 정책들에서 양당 대결이 첨예화되고 사회적 균열이 커지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명한다.


196년만에 멈춰선 워싱턴 의사당 시계 (출처 :AP연합)


미국의 정치 상황에 대조를 이루는 것이 독일의 경우이다. 9월22일의 연방하원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당기독교민주연합(CDU)과 그 바이에른 주의 자매당 기독교사회연합(CSU)은 41.5%의 표를 얻고 과반수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631석 중 과반수에서 5석이 모자라는 311석만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다른 정당과 연립하지 않으면 정부를 수립할 수 없게 되었다. 


CDU는 처음에 녹색당과 협상하였으나 이에 실패한 후, 26%를 득표한 사민당(SPD)과의 교섭을 시작하였다. 사민당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CDU와의 ‘대연립’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어서, 이번에 다시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불리한 일이라는 의견도 없지 않았으나, CDU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협상이 시작될 때의 보도를 보면, 첫 회의에서는 대표들의 표정이 밝고 상호신뢰의 말이 오고간 화기애애한 자리였다고 한다. 협상이 성공한다면, 크리스마스 전으로 내각이 구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진수(進水)할 때까지는 현 정부가 그대로 그 권한을 행사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페어 슈타인브뤽 사민당 총리 후보와 악수 (출처 : AFP연합뉴스)


메르켈 정부는 말하자면 임시 수권 정부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러한 정부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법이나 제도야 어찌 되었건, 파당적 심리가 정치의 추동력이 되는 사회에서는 이런 경우 정부는 반은 마비상태에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내 특히, SPD 내에서 비판은 계속되고 언제라도 협상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들이 나온다. 그러나 협상은 계속되고 있고 또 협상 절차가 그렇게 복잡한데도 끈질기게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SPD의 경우, (이것은 당의 규칙이 당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숙의(熟議)의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협상에서 열세에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협상은 투표로 229명으로 구성된 중견당원의 동의를 받아야 했고, 협상이 끝나면 그 결과를 47만 당원에 알려 찬반 의견을 물어야 한다. (조건은 20% 당원의 우편 응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상의 복잡성에 더하여, 정책 타협의 절차도 극히 까다로운 것으로 보인다. 절충안은 양당의 당원 70명으로 구성된 12개의 실무그룹이 토의해 내놓아야 한다.


연립정부가 성립한다면 그 안에서 소수파가 될 SPD는 당 정책의 많은 것에 대하여 CDU의 동의를 요구할 것이다. 그중 중요한 것은 노동 임금과 세금에 관한 것이다. SPD는 증세와 최저임금제를 주장한다. CDU는 증세에 반대하고 최저임금제의 실시를 주저한다. 이러한 정책들은 각 당의 기본 정책일 뿐만 아니라 선거공약이었다. 그러나 양보 없는 타협이 있을 수는 없다. 최종적인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증세는 보류되고 최소임금제는 수용된다는 방향으로 타협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 논의이다. 양당은 당 정책에 대하여 그들 나름의 변론을 내놓고 있다. SPD의 주장대로 최저임금제 그리고 다른 사회복지 정책들을 위해서는 세수가 늘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고액수입에 대한 증세, 금융거래세 도입 등이 필요하다. CDU는 증세에 반대하면서 그것은 기업 위축의 요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 실업자도 늘어날 것이다. 또 최저임금제는 전반적으로 물가를 상승하게 하여 많은 사람들의 수입의 실질적인 감소를 가져 올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서, 구동독 지역에서는 노동자의 4분의 1이 SPD가 제안하는 시간당 8.5유로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이 최저임금제가 채택되면 기업이 위축되고 실직자들이 늘어 날 것이다. CDU는 임금 조정은 기업과 노동조합의 상호협상에 맡기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SPD는 협상을 시작하면서 타협없이 고수할 정책으로 열 개의 정책을 내놓았는데, 증세와 최저임금제는 그 중 가장 중요한 정책이다. 그 외에도 임금의 남녀 평등, 인프라 정비와 교육투자, 재정긴축 정책의 완화,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 조건의 개선 등도 협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정책에 포함된다. EU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도 SPD가 중요한 것으로 내세우는 정책이다. 원전폐지 정책에는 양당이 합의했지만, 석탄에 의존하는 전력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고 전기료가 상승하는 것에 고민은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정책의 많은 것은 SPD의 사회민주주의 지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모든 문제에서 그 지향이 일관되게 표현된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리고 CDU의 정책이 사회적 고려가 없는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동성애자의 평등권을 강화하자는 것은 SPD의 주장이지만, CDU도 그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외 정책에서, CDU에 비하여 SPD는 더 개방적이고 보편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고, SPD가 이민자 가족의 이중국적을 인정하자는 제안은 그러한 입장의 표현이라고 하겠지만, 두 당은 다 같이 이민자의 통제를 엄격히 하는 데에 동의한다. CDU가 아동의 보육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법을 만들고 지금도 그것을 지속할 의도를 가지고 있으나, SPD는 그보다는 장애자 지원을 강화하고 지방자치체의 사회비용에 중앙정부의 보조를 늘릴 것을 주장한다. 


말할 것도 없이 외부의 비전문인으로서 이러한 세부 정책을 바르게 평가할 수는 없다.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세부 사항이 연립정부 협상에서 토의가 된다는 사실이다. (세부적이라는 것은 높이 살 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보다 섬세하고 유연한 현실적응력을 옭아매는 것일 수도 있다.) 놀라운 것은 자세한 정책적인 문제를 놓고 보수지향의 기독교민주당과 진보지향의 사회민주당이 자리를 함께하여, 협상하고 타협하고 합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 헌법은 독일연방을 ‘사회국가’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사회복지국가의 이상을 합하여 국가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 테두리가 두 정당의 합의의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근본이 되는 것은 당을 넘어 나라 전체를 생각하여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당위라고 할 것이다. 거기로부터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이 적정한 수준의 인간적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고려도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 하는 것은 오늘의 현실과의 관계에서 생각되어야 하는 방편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은 조건들이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의 복지사회 지향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급속히 하나가 되는 세계에서 역사적 당위이다. (국토가 좁고 중앙집권의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에서 이것은 더욱 그렇다.) 사회적 고려가 없다면, 오바마케어의 문제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미트 롬니가 매사추세츠주의 지사였을 때 내놓은 의료보험제도에 비슷하다고 이야기된다. 


요즘 우리나라 정당과 매체에서 제일 많이 거론되는 것이 국정원 댓글 문제이다. 바로잡혀야 할 일의 문제가 제기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이 나아가야 할 진로에서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보다 높은 단계는 우리의 삶을 보다 인간적인 삶이 되게 하는 일이다. 크든 작든 한가지 정치이념에 충실하고 정치적 충성심을 일관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은 한국인 특유의 성향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괴로웠던 과거사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 나름의 덕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념 또는 자기정당성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정원 문제와 같은 것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한다.


김우창 |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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