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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잘되어야 노동자도 잘산다.” 참 자주 듣는 얘기지만, 이 말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그건 이 얘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들이 공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의 2008년 영업이익은 4조1340억원, 그런데 5년 뒤인 2013년에는 36조7850억원으로 무려 9배 가까이 치솟는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영업이익 합계는 같은 기간 3조726억원에서 11조4926억원으로 4배 가까이 뛴다. 또 10대 그룹 81개 상장사의 올 1분기 말 사내유보금은 515조9000억원으로, 5년 전인 2009년의 271조원에 비해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삼성전자(158조원, 123.4% 상승)와 현대차그룹(113조원, 176% 상승)은 2배 이상 껑충 뛰었다.

기업의 영업이익과 사내유보금은 매년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는 반면, 노동자들 임금 인상률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최근 5년 동안 물가인상에도 못 미쳐 실질임금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일자리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고용보험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08년 피보험자격 상실자 수, 즉 일자리를 잃거나 그만둔 노동자들 중에서 ‘비자발적 사유’로 일자리를 잃은 수가 173만명이었다. 그런데 5년 뒤인 2013년에는 이 숫자가 221만명으로 무려 50만명 가까이 늘어났다.

비자발적 사유란 뭘까? 정리해고·희망퇴직·계약해지·폐업 등 사실상 ‘해고’를 말한다. 즉, 우리는 1년에 200만명 넘게 해고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세월호 참사 때문에 소비가 줄었다며 난리다. 해고가 이렇게 늘어나는데 민간 소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었다. 해고가 매년 급증하는데도 경제가 폭삭 가라앉지 않았으니 말이다. 없는 돈에 노동자와 서민들이 빚을 내서 소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벼락을 맞은 기업들은 투자와 소비를 오히려 줄이다보니 유보금이 흘러넘치는 상황이다.

정부세종청사 용역 노동자들이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임금 인상 촉구 결의대회를 마친 후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실질임금이 삭감되었음을 주장하며 이에 대한 해결을 요청하였다. _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관련 규제를 풀어 경기부양을 하겠다고 한다.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에, 빚을 더 내서 투기열풍으로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자는 말이다. 폭발 시기만 조금 늦추는 것일 뿐 거품은 더 커진다. 건설회사 이윤은 보장되지만 서민들은 벼랑 끝 위기로 내몰린다.

애초 내년에 시행될 예정이던 저탄소 협력금제 시행을 무려 6년이나 늦춰 2021년으로 연기해주었다. 자동차 회사에 또 규제완화를 해준 거다. 덕분에 국민들은 앞으로도 더 많은 배기가스를 들이마시게 생겼다. 그럼 반대로 이윤을 보장받은 기업들은 노동자·서민 삶을 개선시켜주나? 앞에 열거한 통계 수치를 보면, 지난 5년간 정반대의 일만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눈 딱 감고 화끈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니 헛웃음만 나온다. 조만간 발표될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 역시 사업주를 지원하는 방안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선 경제 민주화가 화두였고, 박근혜 당선 뒤로는 경제 활성화를 말한다. 하지만 둘 다 기업과 부자들 배만 불려줬지, 밑바닥과 낮은 곳에선 신음소리만 더 커졌다. 이제 판을 뒤집어야 한다. 낮은 곳과 밑바닥으로 흐르는 ‘경제 자연화’로 가야 한다.

등록금은 곱절로 오르는데 어렵게 취업해도 ‘반값 노동자’ 신세, 이걸 뒤집어 ‘반값 등록금’에 ‘곱절 임금’을 받아야 한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고임금제를 도입해 동결(!)하고, 최고임금을 넘는 기업 임원들 임금을 적립해 최저임금 인상 재원으로 활용하자. 넘쳐나는 사내유보금만 활용해도 최저임금을 간단히 곱절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뒤집어야 산다. 경제도, 서민들의 삶도.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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