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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고약하다. 46일 동안이나 곡기를 끊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에 대해 사실 왜곡까지 하면서 인격적인 모독을 서슴지 않은 사람들 말이다. 가짜 단식, 황제 단식 운운한 것을 비롯해, 김진요(김영오씨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를 결성해 치킨에 짜장면 먹는 장면을 연출한 사람들 말이다. 자식 잃은 깊은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이를 헐뜯고 조롱한 사람들 말이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에 자식을 잃었는데도 단식하다가 그냥 죽으라며 막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어떤 이는 그 고약한 사람들과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에 살아야 하느냐며 슬피 묻고, 어떤 이는 그들은 사람도 아니라며 응징해야 한다고 분노를 내뱉고, 어떤 이는 화를 낼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이라고 냉소한다. 어떤 이는 다 그렇고 그런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넘어간다.

뭐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싶은 중에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자문자답한다. 양보 없는 이해갈등과 소모적인 이념갈등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살아 온 탓에 그럴는지 모른다. 아집과 편견을 내세우는 것이 생존에 필요하다 여겨 그럴는지 모른다. 내일이 두려운 고단한 삶 때문에 악밖에 안 남아 그럴는지 모른다. 결국 누군가를 적으로 몰고 망가뜨리는 데에만 익숙해져 그럴는지 모른다.

결국은 뭣일는지 모른다로 귀결된 연이은 추측 끝에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부족하다 싶어 그러하다. 건국 이후의 대한민국 현대사 중 3분의 2가 넘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을 살아왔는데도, 이 땅 사람들의 고약함에 화들짝 놀라는 필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어 그렇기도 하다.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장하라!'라고 적힌 손 팻말을 들고 여야 유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 수용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불필요한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물음에 다다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물음을 던지지 않고선 답을 구할 수 없고, 답을 구하지 않고선 어떤 변화도 얻을 수 없다. 정답이란 것이 따로 있고, 정답을 알아야만 문제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썩 훌륭한 답이 아니라 해도 나름의 답이 있어야만 몸과 마음을 움직여내는 확신과 의지가 생겨난다. 특히나 뭇사람의 생각과 뜻을 모으려면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정치·사회적 갈등들을 잘 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답을 갖고 있지 못해서다. 설사 갖고 있다 해도 서로 공유한 답이 아니라 그러하다. 갈등은 당사자 간의 쟁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된 것처럼 보여도 강자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낳고 끝난 것일 수 있다. 약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맺음이 아니다. 갈등의 결과가 공평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힘의 불균형을 채워주는 비당사자들의 관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 자기 문제가 아닌 것 혹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에 뛰어들지 않는다. 답이 있어야만 한다. 그냥 답이 아니라 비당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답이어야 한다.

답을 구하기 위해 물음의 방식을 바꿔 본다. 대부분의 오류는 물음을 잘못 던져 태어난다. 이명박 정권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수난을 당한 것은 ‘어찌 민심을 돌릴 수 있을까’를 묻지 않고, ‘시위 배후가 누구냐’를 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삶의 현실에서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이유를 묻기보다는, 저런 것에 대해서는 어찌 대처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선 일단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인간의 고약함에 어찌 대처해야 하는가 혹은 고약한 인간을 어찌 대해야 하는가. 지켜보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속내로나마 수긍할 대처법은 무엇인가.

아무리 고약하다 해도 누군가를 절멸시킬 수는 없다. 규범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악마 같다 해도 어쨌든 인간이다. 사리분별의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해도 헌법상 국민이다. 특히 갈등중재의 역할을 맡은 정치인들이 나서서 그들이 가진 답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들어줘야 한다. 누군가를 적으로 다루면 진짜로 적이 된다. 유령으로 취급해서도 안된다. 실체를 인정받으려고 더 고약해질 수도 있다. 그저 도리와 책임을 요구받는 같은 인간이자, 같은 국민으로 대하면 된다. 그래야 자격의 부여 및 박탈 여부를 결정할 룰의 준수를 명령할 수 있다. 판단과 처분에는 요건과 순서가 있음을 잊어서도 안된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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