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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경향논단]‘삐끼’들

opinionX 2012. 5. 15. 22:00

전원책 | 자유기업원 원장·변호사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내가 방송에서 정치비평이란 걸 하니 ‘정치판이 어떻게 되어가는 거냐’ 하는 질문들이다. 이런 류의 질문은 대개 누가 대통령이 되겠느냐라거나 누가 되는 게 좋으냐로 끝난다. 어느 쪽이든 묻는 이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막상 나는 누가 대통령이 되는데 관심이 없다.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잠룡이든 무슨 상관인가. 누가 되든 세상이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까진 그렇다. 무슨 소리냐고? 박근혜가 되면 세상이 좋아지고 문재인이 되면 세상이 확 바뀌고 안철수가 되면 희망이 샘솟는 나라가 된다고? 그런 허망한 꿈은 꾸지 마라. 그런 말 하는 언론인과 정치평론가들은 사이비다. 사교(邪敎)의 집사보다도 못한 삐끼다.

무릇 사교 교주와 정상배들의 공통점은 달콤한 말을 잘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기꾼처럼 말 하나는 번지르르하다. 청년실업을 없애겠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 복지를 왕창 베풀겠다, 선진 강국으로 만들겠다, 이 따위 거대담론은 정말이지 유혹적이다. 그러나 천국이 눈앞에 있다고 속삭이는 사교 교주와 무엇이 다른가. 그런 거대담론만으로 세상이 나아질 거라 믿는다면 나를 욕해라. 그러나 내가 관찰하기로는 세상은 말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 그렇게 쉽다면 문민정부 4기 동안 왜 불만이 첩첩이 쌓였겠는가. 왜 중산층이 죽어나간다는 소리가 터져나오고 왜 배고픈 자는 계속 고프다는 원성이 아직도 쏟아지는가.

 

청년실업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현실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예컨대 청년실업 문제는 고등교육의 보편화 문제와 연결된다. 지금처럼 학력이 인플레 되고 대학졸업장이 제 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 고졸만으로 살 길을 찾으라는 말은 식언(食言)이다. 실업고를 대폭 지원하고 고졸 기술직에 국가가 임금을 보조해 대졸과의 임금격차를 없애도 어렵다. 고졸의 상처를 꿰매려면 나중에 그들이 진학하려 할 때 국립대학을 개방해야 한다. 이런 혁명적 조치가 아니면 고등교육의 보편화 현상은 계속될 것이고 청년실업은 구조적인 짐으로 남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 유연성과 직결된다. 이건 더 어렵다. 이쪽을 당기면 저쪽이 휘어지고 저쪽을 당기면 이쪽이 휘어진다. 결국 노동 유연성을 노조가 받아들일 수 있게 사회안전망이 먼저 구축돼야 해결된다.

왜 정치인들을 믿지 못하느냐고? 적어도 내가 만난 정치인들은 전부 복지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말은 할 줄 알았다. 그런 화장(化粧)은 그들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아마 그 중의 절반은 복지사각지대가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단적인 증거를 하나 대겠다. 이 나라 국회는 매춘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성매매특별법을 만들었다. 가임여성 11명 중 한 명이 매춘에 종사하는 게 우리 사회다. 그 처녀들이 희귀병을 앓거나 다른 불운으로 파괴된 가정의 유일한 구명줄이라면 그들은 현대판 심청이다. 그러니 애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에게 감동하는 우리가 매춘여성에게 손가락질한다는 것은 모순인 것이다.

또 하나 예를 들자. 독거노인이 200만명을 넘고 그 중 9만5000명은 고립되어 있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그 가운데 2만명 정도가 기초생활수급자다. 나머지 노인들은 어디엔가 있는 부양의무자의 존재 때문에 폐지를 주워 연명하면서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를 못낸다. 이런 사태를 두고도 정치인들은 아이들 급식타령을 하거나 부잣집 마나님들에게 출산장려비를 주면 애를 낳는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런 정치인들이 있는 한, 그리고 그들 중에 다음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 뻔한 이상 누가 대통령이 된들 무슨 상관인 것인가. 그러니 내게 내년을 묻지 말라. 누가 되든 우리는 복지 타령 하는 겉멋은 부리지만 훨씬 더 어두운 그늘을 지고 살아야 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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