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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원을 갔다가 연락도 없이 늦을 때가 있었습니다. 큰 애와는 다르게 휴대폰 배터리 충전을 제때 해놓지 않는 탓에 귀가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연락이 되지 않으면 혹시라도 흉한 일을 당했을까 초조해져 애타게 아이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4월16일 참사가 발생하고 부모들은 하루하루를 이러한 기다림과 백배 천배의 간절함으로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그 간절함은 우리의 목숨줄까지 끊어 놓을 수도 있겠다는, 거의 죽음의 문앞에까지 갔다가도 오늘은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목숨을 부지하던 날들이었습니다.

팽목항의 시계는 이렇게 늘 24시간을 지나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9월30일이 유가족이나 실종자들에게 168일째의 ‘4월16일’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매번 미뤄지는 수색완료 목표 예정일을 마주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은 몸의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경험을 합니다.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의 약속을 미루고 이미 되었다고 믿었던 일들이 아직 안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려주었을 때, 과연 제대로 수색이 이뤄지고 있나 화가 나지만 마지막까지 믿고 맡겨야 할 이들이기에 실종자 가족들은 마음을 추스릅니다.

세월호에는 아직도 수색을 못한 객실이 있습니다. 내려앉은 옷장들과 이불 틈바구니에서 지금도 매일 아이들의 유품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객실도 다 수색한 것이 아니고 유품도 계속 나오고 있으니 실종자 가족은 매일 오늘이라도 아이가 나오겠지 하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구해주지 못했는데, 시신 수습이라도 해야, 아니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일도 못하면 남은 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기에, 나중에 아이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기에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

박은희 단원고 故 유예은양 어머니 (출처 : 경향DB)


4월16일 이후 아이를 찾은 부모들이 하나둘 진도를 떠나면서 실종자 가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외로운 싸움입니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적거릴 때도 정부의 구조와 수색은 늘 답답했고 주요 언론들은 문제의 본질이 아닌 이야기들로 분주했습니다. 이제 10명의 실종자 가족만이 남았으니 과연 국민과 정부와 언론은 우리를 얼마나 기억하고 함께 애를 써줄까 생각합니다. 진도체육관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그곳에 가득 찼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때의 기억 속에서 버틸 힘을 찾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물어봅니다. 형제들끼리 투닥거리며 싸우다가도 누가 형이나 동생에게 해코지를 하면 성을 내며 한편이 되어줍니다. 지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유가족과 실종자에게 필요한 것은 ‘저희도 한편이에요’ 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글로 또는 집회에서 그리고 분향소나 진도 방문으로….

매주 금요일에 팽목항으로 출발하는 ‘기다림의 버스’를 타는 것은 ‘저희가 함께할게요. 제대로 수색이 되는지 함께 지켜봐 줄게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오늘도 가늘어진 숨을 힘들게 헐떡이며 쉬고 있는 이들에게 인공호흡기가 되어줄 겁니다. 10월3일, 전국에서 팽목항을 향하는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합니다.


박은희 | 단원고 故 유예은양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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