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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기업 배급사와 상영관 대표를 포함한 영화업계 관계자들이 발표한 영화 상영과 배급의 공정환경 조성을 위한 업계 협약을 두고 중소 제작·배급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계의 자발적 합의로 마련했다는 협약에는 영화 상영관과 스크린 수의 배정기준 공개, 소형영화 최소 상영기간 보장, 상영 계약 시 표준계약서 사용, 배급사가 상영관에 지급해온 디지털 영사비용 지급 중단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대로만 된다면 스크린 독과점과 자사 계열사 영화 밀어주기 등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협약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절차와 내용에서 모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작 대기업 불공정행위의 피해 당사자인 중소 제작·배급사들이 배제됐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기업 중심의 합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나선 상황이다. 이들은 특히 이번에 합의한 표준영상계약서가 현재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의 동일한 분배 비율 조정, 무분별한 무료입장권 발매 금지, 부당한 디지털영사기 사용료 징수 등에서 자신들의 의견 자체가 무시됐다고 항변한다. 심지어 한 영화인은 “법적 강제력도 없는 이번 합의는 왼손과 오른손의 악수에 불과하다”며 냉소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시민들이 영화표를 예매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사실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과 영화 밀어주기를 해결하겠다는 선언과 협약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09년, 2011년, 2012년, 2013년에도 대동소이한 협약이 있었지만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예컨대 CJ가 투자, 배급, 상영까지 도맡은 <명량>이 스크린 독과점을 발판으로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우는 동안 다른 영화들은 이른바 ‘퐁당퐁당’ 교차상영의 피해를 봤다. 영화계에 이런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보여주기식’으로 여론을 호도한다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대기업 투자 배급사와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만의 합의가 아닌, 업계 모두가 참여하는 합의는 영화의 다양성과 공정 시장 환경을 위해 절실하다. 또한 이를 위해 정부는 투자·배급사와 극장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잘 작동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미국과 유럽의 경우처럼 대기업의 영화 제작 참여 제한, 배급과 상영 분리 방안, 저예산·독립영화 전문영화관 확대 등 영화 상영 시장의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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