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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球)
나는 흰 빗자루를 들고 있다
성장하려는 고양이의 옆구리를 간질여
작은 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괴롭히고 있다
슬리퍼와 고아는 뒤축이 닳고
점박이 돌인 줄 알고 주웠던 알은 이불 속에서
자극을 주어도 무엇으로도 태어나지 않는다
불안은 순결한 목소리로 숲 비둘기 흉내를 낸다
여자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일과를 마친 남자 선생들이 축구를 한다
공을 교실이 있는 어두운 건물로 굴러 들어가고
삼삼오오 모인 여학생이
잠시 공 없이 서 있는 남자 선생 구경을 한다
연못가 시계탑의 조각상은
무엇인가를 버티면서 전신의 힘을 발끝에 주고 있다
태양과 달이 아무렇게나 공중에 떠 있는 하루
비 그친 옥상에 방치된 새끼 고양이는
파리의 끈질긴 구애를 받고
- 박판식(1973~ )
△ 어떤 정념도 정착할 수 없이 흘러가는 파국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에 정착하며 살아야 하는가. 인간이 시라는 부력을 통해 자신의 끔찍함을 경험해야 한다면, 우선 시가 통로로 삼고 있는 언어의 불완전함을 먼저 통과해야 할 것이다.
이 시에서는 비둘기나 고양이의 이미지들이 불쑥 튀어나오고, 남자 선생들의 축구 장면과 삼삼오오 모인 여학생의 이미지가 어떤 서사적 결합이나 엉킴 없이 단순히 병치만 되고 있다. 다만 조각상이 “무엇인가를 버티면서 전신의 힘을 발끝에 주고 있다”는 정적인 장면과 내가 서 있는 수직의 사태가 만나고 있을 뿐이다. 공이 굴러가는 것처럼 다면화된 시선에 의해 비춰진 상과 정적인 수직 이미지가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치의 전략으로 인해 ‘버틴다’라는, 움직임을 나타내되 움직이지 않으려는 동사가 낯설게도 도약하고 있다.
무엇을 그렇게 버티게 하고 싶었을까. 박판식은 움직이는 물상들을 통해 꿋꿋이 서 있는 또 다른 존재를 발견한다. 세계가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비추기 위해.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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