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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집 가장
훗날을 기약하는 백수 가장
지금 실업수당 받으러 집 나서는
젊은 뒷그림자가 유난히 검다
옆집 가장은
저도 모르게 튕겨져나오게 된 저기 저
정글게임장의 원리를 잘 모른다
아직도 닭 부리 쪼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세상에서
잘사는 법을 모른다
그저 오늘 거리에서 서성이는 겁먹은 젊은 눈동자가
겨울 날씨처럼 흐릿하다
훈기 찾아 제 입김 불어보지만
아내의 쪼그라든 스웨터처럼
허공에서 형편없이 오그라들었다는데
오늘 아침도 늦잠 자고 심신을 뒹구는 사이
둘째 아이는 학원까지 다녀와
자기 방문을 쾅, 닫았다는데
쾅, 마음마저 부서져버린 어제가 있었다는데
- 이사라(1953~ ) 부분
△ 한데 묶어 ‘백수(白手)’라 부르지만 일을 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무업자(無業者)나 무위도식족(族)과 실업자(失業者)는 다르다. 근로능력과 취업 의지가 있고, 퇴직 전 18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권고사직이나 계약만료 등의 사유로 퇴사한 실업자에 한해 국가는 ‘실업수당’을 지급한다. 요즘 들어 부쩍 옆집 가장과 마주치는 일이 잦다. 운동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채 엘리베이터에서, 카트를 밀다가 마트에서, 담배연기를 내뿜다가 아파트 모서리에서 어색한 인사를 건네오곤 한다. 다투는 소리도 가끔 들리는 게 어쩐지 심상치 않다. 아이들도 아직 고등학생들인데, 아내도 전업주부인데 주변머리가 허전한 그에게 남은 깝깝한 ‘훗날’이 단지 옆집 일만 같지 않다. 어딜 가나 어렵다는 말들뿐이다. 연체에 부채에 부도에 경매가 창궐하는 ‘정글게임장’에서 물러나 ‘일몰을 목에 감고 사라지는’ 옆집 가장들이 늘고 있다. 여기저기의 문들이 ‘쾅’ ‘쾅’ 닫히는 소리 요란해도 “햇빛 한줌, 물 몇 방울만 있으면/ 다시 살아나는 겨우살이처럼” 살아남았으면 한다.
정끝별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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