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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 동아대 교수·문화연구



민주당의 기억력은 딱 보름짜리다. 보름만 지나면 그 전의 일을 도무지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안중에도 없는 저들의 뻔뻔스러움은 단연 군계일학이다. 그런데 민주당 못지않은 이들이 또 있다. 바로 안철수의 사람들.


얼마 전 법륜 스님은 한 인터뷰에서 대선 패배와 관련해 안철수로 단일화됐으면 이기고도 남는 선거였다고 주장했다. 며칠 후 안철수 캠프의 한 교수도 안철수가 더 경쟁력이 있었다며 거들었다.


과연 안철수로 단일화됐다면 그가 박근혜를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을까. 나는 안철수가 승리했을 거라는 의견에 100% 동의한다. 왜? 문재인은 그의 혼과 신을 다해 안철수를 도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최선을 다했는가. 


미국으로 출국하며 손 흔드는 안철수 (경향신문DB)


사실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은 물론 진보진영에서도 안철수 비판은 금기시됐다. 정당한 비판조차 돌팔매를 각오해야 할 정도로 안철수는 보호받았다. 그러나 대선도 끝났고 안철수도 정치 투신을 결정한 이상 그의 궤적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진보의 패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법륜 스님의 지적대로 단일화가 ‘아름다운 단일화’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엔 문재인의 책임도 있지만 안철수의 책임이 더 크다.


안 캠프의 전략은 벼랑끝 전술이었고 사실은 버티기였다. 끈질기게 협상을 늦추면서 다수의 경선방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만 남겨놓은 상태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방식을 제안했다. 또 몇 번씩 협상을 중단시켰을 뿐 아니라 후보 사퇴 후 문 후보를 돕는 문제에 있어서도 ‘민주당이 명분을 줘야 한다’며 남 탓만 했다. 이 지루하고 짜증나는 단일화는 많은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안겼다.


더 피곤했던 것은 그(들)의 애매모호함이었다. 살다 살다 이렇게 헷갈리고 종잡을 수 없는 정치인(들)은 처음 봤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선문답 같은 안철수의 말은 ‘측근’ ‘관계자’ ‘핵심인사’의 말까지 곁들여 해석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고 수많은 정치평론가가 독심술까지 써봤지만 결국 헛것이었다. 한국말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안철수를 통해 알게 됐다. 그는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나서지 않았던가. 결국 안철수는 자신의 지지율을 조금도 올리지 못하고 까먹기만 하다가 결국 문재인에게도 역전당하게 된다.


또 법륜 스님 등은 문재인으로 단일화되는 바람에 지지자들이 등을 돌렸다고 했지만 이는 고교생 수준의 셈법이다. 단일화를 통해 진보가 정권을 잡았던 1997년 김대중은 극우보수 김종필과, 2002년 노무현은 재벌보수 정몽준과 단일화했다. 등 돌릴 사람으로 치면 이때가 훨씬 더 많았지만 결국 진보는 승리했다. 게다가 이 두 번 모두 민주노동당의 권영길이 출마했고 2002년엔 (무려!) 3.9%를 가져갔음에도 진보는 이겼다.


안철수 측에겐 ‘정권교체’보다 혹시 ‘안철수 대통령’이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을까. 안철수의 사퇴 후 몇몇 캠프 인사들이 “이제 누가 돼도 상관없다”며 ‘차기’를 말하자 많은 지지자들이 적극 화답하지 않았던가. 사실 문재인에 대한 ‘적극적 지지파’와 ‘소극적 지지파’ 간의 이견 충돌은 익히 알려져 있다. 소극파가 한나라당 출신 인사들인지 변호사 그룹인지 그 내막을 알 수는 없으나 바로 이들이 협상을 버티기로 일관하다 ‘심기가 불편하다’며 중단을 선언했고, 줄기차게 ‘명분’을 달라며 떼를 썼으며, 한국말을 헷갈리게 했을 뿐 아니라, 남포동 갈림길에서 문재인 유세장 쪽으로 절대 가선 안된다고 외쳤던, 바로 그들 아니던가.


친노세력도 문제이고, 손 놓고 구경만 하던 민주당 의원들도 문제다. 그러나 안철수도 대선 패배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이제 와서 한낱 ‘경쟁력’ 가지고 국민들을 서글프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서 결국 안철수는 아무런 책임이 없단 말인가. 이 땅에서 진보 해먹기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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