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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 동화작가


 

‘중딩’이 제일 무섭다고들 한다. 오죽하면 중2가 무서워서 그 누구도 한국으로 쳐들어오지 못할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선 문용린 후보가 참으로 용감한 발언을 했다. 토론에서 ‘학생들은 미성년자고 인권도 마찬가지’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 무섭다는 중2병을 모르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무시할 만해서 무시한 거라고 보는 게 맞겠다.


제 아무리 센 척 해봤자, 중2에게는 그 한 표가 없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은 물론 고등학생도 투표권이 없다. 


그러니 선거 때가 되어도 후보들은 청소년들 눈치를 보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들은 물론 교육감이 되겠다는 후보들조차 그러하다. 빈말이라도 학생님들의 인권은 소중하다고 다소곳이 고개 숙이는 게 아니라, 너희들 인권은 미성숙한 반토막짜리라고 대놓고 말한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도 찬성은커녕, 얼렁뚱땅 넘어가지도 않고 자신있게 반대한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네 후보 가운데, 오직 이수호 후보만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분명한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일제강점기에도 입시 때문에 아이들이 자살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내 기억에 따르면, 이미 20~30년 전부터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최근에는 학교폭력 문제까지 심해지면서, 모르긴 해도 지금까지 줄잡아 수만명의 청소년들이 생을 버렸다. 1년에 수백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만약 어떤 전염병으로 아이들이 그렇게 죽었다면, 교육감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이 자리를 내놓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나가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은커녕,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자는 그 당연한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주민 발의” 서명운동 호소 도보행진 (경향신문DB)


학생인권조례는, 한마디로 학생들에게 자기결정권을 주는 일이다. 자기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자기존중감이 높게 마련이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행복에 보다 가까이 있다. 행복한 사람은 상처나 위기에 쉽사리 무릎 꿇지 않는다. 자기 생을 함부로 포기하지도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내가 입을 옷을 내 손으로 고르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의 삶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는가? 


학교폭력의 핵심은, 학생 간 폭력이 아니라 교육제도가 학생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그 폭력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고서 학생 간 폭력을 그쳐야 한다고 아무리 외쳐봤자 공염불이다.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설 정당한 권리가 없는 사람이 공동체의 폭력에 둔감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자기결정권이 없는데, 공동체의 문제에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질 수는 없다.


교육감 후보들은 너나없이 교육개혁을 말한다. 행복한 학교, 공교육 정상화를 부르짖는다. 말이야 좋다. 그들의 당락을 좌우할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소리다. 그런데 과연 ‘누가’ 행복한 학교를 말하는가. ‘누가’ 원하는 공교육 정상화인가.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라야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공교육 정상화여야 한다. 지배자에게 순응하는 예비 비정규직 노동자를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라, 학교는 아이들의 행복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그 첫단추가 될 수 있다. 세부 항목을 시행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는다 해도, 그 선언만으로 천금같은 무게를 지닌다. 나아가 아이들이 학교의 나아갈 바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투표권을 주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1923년 5월1일, 어린이날을 선포하며 세계 최초로 어린이권리선언을 발표했다. 모두 9개의 항목인데, 그 마지막은 아래와 같다.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末梢)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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