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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은 범보수와 범진보 사이의 대접전이 높은 투표율로 나타났고, 이것이 박근혜 후보를 1987년 민주화 이후 첫 과반수 당선인이 되게 만들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도 절반 가까이 상존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후보가 얻은 표는 1445만여표로 당선인보다 108만표 적었으나 득표율은 48%에 이르렀다. 정권교체의 희망은 5년 뒤로 넘겨졌지만 이 숫자의 의미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끄지 않고 이어가야 할 분명한 이유이자 증좌이기 때문이다. 


이 48%가 갖는 소회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더러는 정권교체와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강렬했던 만큼이나 좌절감을 넘어 억장이 무너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철탑 위에서 칼바람 맞으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공영성이 말살된 ‘무늬만 공영방송’에서 슬픈 송년회를 갖는 많은 방송 종사자들이 그렇다. 해고 노동자들과 취업문제로 고민하는 젊은이 등 뭉뚱그려 양극화 심화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정치를 기대한 사람 가운데는 실망이 지나쳐 정치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리고 무관심 쪽으로 기울 우려도 있다.


그들의 기대를 벗어난 선거 결과에도 우리가 희망을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실망이 무관심으로 변질돼서는 안된다. 우리가 박 당선인에게 축하 덕담만 할 수 없는 데는 매우 분명한 까닭이 있다. 근본적으로 그의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이해가 몹시 빈곤하며, 이것이 경제민주주의나 공영방송관 등에서 드러나는 허술한 인식들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당선인이 어제 화해와 대탕평,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상생과 공생, 국민행복시대 등을 국정 키워드로 내세웠음에도 우리는 평가를 유보할 수밖에 없다. 당초 강하게 내건 경제민주화 약속을 선거 중반에 손바닥 뒤집듯 대폭 후퇴한 것에서 보듯 그의 준비된 여성 대통령론 등의 진정성은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서울 성북구 정릉4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정릉4동 제2·3 투표소 투표 행렬


향후 전개 양상이 몹시 불투명한 이런 중대 현안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야당에만 맡겨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시민사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높은 투표율과 절반 가까운 표로 의사를 나름대로 표시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일상적 삶 속에서도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관심을 갖고 감시하며 비판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의 권리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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