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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DB)

마스크 5부제로 정점을 찍었던 ‘마스크 대란’의 먼지가 차츰 가라앉고 있다. 연일 ‘마스크’가 넘쳐났던 신문과 방송 헤드라인에서 마스크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된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서만 유독 모든 관심을 빨아들였던 ‘마스크 블랙홀 현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개인이든 사회든 ‘오답노트’가 중요하다. 대란이 잦아들고 있는 이때, 다음을 위해서라도 주요 플레이어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오답노트를 한번 만들어 보자.

정부 측면에선 마스크 착용과 관련해 분명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점이 뼈아픈 실책이다. 감염병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본부의 공식입장은 줄곧 ‘일반인에겐 필요 없다,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이나 노약자들의 의료기관 방문 시 마스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월 ‘감염예방을 위해 KF94, KF99 등급 마스크 사용이 바람직하다’고 했다가, 지난달엔 KF80으로 기준을 낮추고, 일반 시민은 혼잡하지 않은 곳에선 마스크가 필요 없다고 했다. 지방 정부도 엇박자를 내긴 마찬가지였다. 가령 경향신문사엔 손씻기와 기침예절 등을 강조하는 질본의 예방수칙 포스터가 붙어 있지만, 필자의 아파트엔 ‘대중교통 이용, 공공장소 방문 시 필수’라는 단서하에, 마스크 착용을 제1 수칙으로 당부한 서울시의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으라’는 구청의 안내방송도 하루 2번씩 나온다. ‘건강한 시민엔 필요 없다’는 질본의 원칙이 무색하게도,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마스크를 쓰고 회의하거나 외부행사 현장을 방문하는 고위공직자, 정치인들의 모습도 ‘무조건 마스크’ 메시지를 각인시켰다. 물론 마스크 대란의 최대 실책은 현장 수급상황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끝내 대통령 사과까지 부른 경제부처의 헛발질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문가 집단은 또 어땠나. 코로나19는 공기 전파가 안되므로, 세균 접촉 가능성이 높은 손씻기가 가장 중요하고, 손으로 눈·코·입과 얼굴을 만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WHO), 미 질병통제센터(CDC), 대만과 싱가포르 방역당국, 질본 등의 일관된 의견이다. 대한감염학회와 대한예방의학회 등은 이를 따라 권고했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부터 마스크 착용을 도드라지게 강조했다. 지난 12일엔 아예 정부 방침과 반대로, 면 마스크 사용, 보건용 마스크 재사용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마스크 부족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자, 사흘 만에 “안 쓰는 것보단 면 마스크라도, 일회용 재사용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다시 내기도 했다. 불안한 시민들에게 차분히 설명하기보다 정부 비판에 골몰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언론이 가장 문제였다. 풍랑에 휩싸일 때 냉정히 사태를 분석하고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일 텐데, 혼란을 방치하고 불안을 증폭한 경우가 많았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말하는 대로 받아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왜 주무 부처, 지방정부의 마스크 착용 권고가 다른지, 한국·외국의 상황과 마스크 착용 기준이 과학적으로 다른 것인지를 질문하고 통일된 의견을 주문했어야 했다. 언론사 홈페이지에 확진자 수나 동선을 공개하는 대신 모든 언론이 공통의 생활수칙을 반복해서 알렸다면 어땠을까. 특히 보수언론들은 대만의 배급제를 부러워하다가, 막상 마스크 5부제를 시작하니 사회주의라고 공격하는가 하면, ‘마스크가 손씻기의 면죄부가 될까 두렵다. 마스크 쓰지 않을 권리를 달라’고 하더니, ‘마스크 문제도 해결 못하는 정부’라며 마스크 대란을 부채질하는 이중 잣대를 드러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국내외 상황에서 언론은 공동체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왔나. 언론은 반성해야 한다.

마스크 대란 속에서 우리 사회는 뭘 잃고 얻었나. 마스크만 문제없이 공급됐다면 재난상황은 크게 줄었을까. 감염의 80%를 차지하는 콜센터, 요양시설, 종교시설 등의 집단감염을 마스크로 막을 수 있었을까.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 다른 이의 건강이 나의 건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마스크 대란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제 역할을 잘했다면, 현명한 시민들은 과도한 마스크 집착 대신 마스크 양보하기, 아파도 쉴 수 없는 사회적 약자 돌아보기 등에 진작 눈을 돌려 스스로 희망의 싹을 틔웠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쯤 조금은 덜 불안하고, 좀 더 뿌듯했을 것 같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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