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혁명의 봄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프랑스 시민들이 앙시앵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리고 혁명의 봄을 맞은 것은 1848년 2월 국왕 루이 필립을 축출하고 나서였다. 2월 혁명 전에 있었던 두 차례의 혁명은 미완(未完)에 그쳤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은 폭정을 일삼은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올려 처형하고, 공화정을 선포했다. 하지만 왕정복고로 권좌에 오른 루이 18세는 귀족과 성직자 등 구체제의 수혜자를 다시 불러들이며 프랑스대혁명의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1830년 7월 혁명은 의회를 강제해산하고 참정권을 축소한 샤를 10세를 끌어내렸다. 앙리 4세 이후 수백년간 프랑스를 지배해온 부르봉 왕조는 7월 혁명으로 몰락했다.

샤를 10세의 뒤를 이어 ‘시민의 왕’으로 추대된 루이 필립도 소수 부유층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면서 1848년 2월 혁명을 불렀다. 2월 혁명은 그때까지의 혁명과는 달리 부르주아 계층이 아닌 노동자 계급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제2공화정을 연 2월 혁명의 성과는 전 유럽에 영향을 미쳤다. 정치권력이 소수의 왕족과 귀족에서 시민으로 옮겨지는 역사의 전환점이 된 2월 혁명이 완결되기까지는 59년이란 긴 세월을 필요로 했다. 혁명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구체제와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반혁명세력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를 마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 귀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없는 봄도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지난겨울 광장은 질서있는 분노로, 저항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정의라는 이름의 1600만개의 촛불은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꺼지지 않았다. 촛불혁명은 죽어가던 민주주의를 살려냈다. 지난 4년간 거짓의 성(城)을 쌓으며 나라를 망친 어리석고도 무능한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이게 나라냐”는 장탄식을 “이게 나라다”라는 환호로 바꿨다. 헌법재판소의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탄핵 결정은 적폐 청산과 정의가 바로 서길 원했던 촛불시민들을 위한 복음이었다.

하지만 “아스팔트를 피로 물들이겠다”며 촛불시민을 겁박했던 박근혜 지지자들은 헌재 결정 이후에도 “탄핵은 빨갱이들의 조작”이라며 야만의 억지를 부리고 있다. 법 위에 군림했던 권력자 한 사람을 위한 맹신과 광기는 태극기의 존엄성을 훼손했고, 애국의 의미도 오염시켰다. 적대와 혐오를 낳았고, 갈등과 분열의 골도 깊게 했다. 그들은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삼색기 대신 부르봉 왕조의 깃발을 부활시킨 루이 18세처럼 박근혜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을 반드시 밝혀”낸 뒤 자신들의 주군으로 돌아올 것이란 헛된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없는 봄, 그냥 보내서는 안된다. 촛불혁명이 박근혜를 파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퇴행의 역사가 반복될 게 뻔하다. 시민들은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었다. 그러나 개혁을 미적댄 보수 여당과 내분을 일삼은 야당은 5·16 군사쿠데타의 길을 열어줬다. 1987년 6월 시민들이 주도한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군부독재 잔당의 재집권을 막지 못했다. 시민들은 두 차례의 혁명을 통해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세상은 부패와 부정이 판치는 기성 정치세력의 놀이판이 됐다. 시민들이 지난겨울 광장에서 20차례에 걸쳐 촛불을 든 것은 두 차례의 쓰라린 경험을 딛고 진정한 혁명의 봄을 맞기 위해서였다.

박근혜 없는 봄은 끝이 아닌 시작이어야 한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공적 시민은 법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재확인시켰다. 하지만 사적 시민들은 여전히 잉여·부품·격차·감시·탈감정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구체제가 온존시켜온 낡은 사회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집권 4년 동안 한국사회는 많은 것을 잃었다. 서민들은 세습 자본주의 체제에서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잃었다.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로 일자리를 잃었다. 청년들은 ‘헬조선’에서 꿈도, 미래도 잃었다. 재벌의 끝없는 탐욕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상생(相生)을 잃었다. 예술인들은 블랙리스트로 창작욕을 잃었다. 최순실 일당의 손과 발이 됐던 공무원들은 영혼을 잃었다.

촛불혁명은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불평등, 특권과 반칙을 없애야 완결성을 갖는다. 그래야 나라의 근간이 바로 서고, 시민들에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열어줄 수 있다. 미국 정치학자 조지 카치아파카스의 말처럼 혁명의 불길이 꺼진 사회에서는 변혁과 진보를 기대할 수 없다. 그걸 알기에 시민들은 박근혜 파면 이후에도 촛불을 끄지 않고 있다. 박근혜 없는 봄, 오래도록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박구재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