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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경향의 눈]선의

opinionX 2017. 3. 9. 10:48

2003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 해병대가 한 마을에 우물을 팠다. 물을 길으려면 강까지 한참 걸어가야 하는 주민들을 위해서다. 그 우물이 폭파된다. 해병은 무장 단체 탈레반 소행으로 보고 다시 우물을 설치하지만, 계속 망가진다. 이곳 취재를 온 미국 종군기자 킴 베이커에게 마을 여자들이 다가가 자신들이 우물을 부쉈다고 털어놓는다. 물 길러 가는 시간, 강가에서 나누는 대화는 그네들에게 숨통이었다. 폭압적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잠시 갖는 해방의 시공간이다. 우물은 일상의 감옥일 뿐이다.

2016년 영화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에 나오는 내용이다. 미 해병대는 선의(善意)로 우물을 팠다. 생텍쥐페리가 말한 ‘사막의 우물’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한데 수혜자로 예비된 여성들에겐 그 선의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게 될 터였다. 선의를 품은 자로서는 미리 알지 못한, 참으로 모순적 상황이다.

선의는 남들이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픽이나 숫자로 어느 정도가 선의인지, 혹은 악의인지 나타나지도 않고 나타낼 수도 없다. 선의의 결과가 꼭 선하게 나오지도 않는다. 대신 “선의였다”고 주장하기는 쉽다.    

지난 두 개 정권에 걸쳐 선의는 변명의 대표적 근거가 돼버렸다. 착한 마음을 뜻하는 보통어에서 ‘특정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법률어에 가까워졌다. 선의는 ‘자유, 바른, 애국’ 등과 함께 음가(音價)만 강해지고 의미(意味)는 옅어지거나 전도(顚倒)된 대표적인 단어가 됐다.

야권 대선 주자 중 2위권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선의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19일 행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됐던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 대해 “K스포츠와 미르 재단도 사회적 대기업의 좋은 후원금을 받아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에는 “24조원을 들여 국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에 확 넣는 것인데, 국가주도형 경제발전 모델로는 대한민국 경제발전 못한다는 걸 계산 못한 것”이라고도 했다.

안 지사는 아마 선의로 ‘그들의 선의’를 거론했을 것이나, 이번엔 한참 틀렸다.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에 ‘선의, 국민의 뜻’ 같은 당의를 입혔지만, 수혜자인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보를 세워 물을 가두면 수질이 악화하고 관리비가 천문학적으로 들 것이라고 예견됐다. 그런데도 공사를 강행해, 자신의 뿌리인 토건족에게 22조원 넘는 돈을 안겨줬다. 2200만명으로부터 100만원씩 걷어 강에 퍼부은 셈이다. 홍수는 계속되고 용수는 확보되지 않았으며 수질은 악화했다. 사업비 원금과 이자는 빼고 보 관리비용만 1년에 2000억원 이상 든다. 헛된 삽질에 들어간 돈과 노력을 차세대 성장동력 찾기에 썼다면 지금 같은 성장 절벽은 좀 늦춰졌을 것이다. 이런 지경인데도 아무도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선의였으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두차례 담화에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을 “국가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이라고 했다. 선의를 내세웠지만, 사업의 수혜자여야 할 시민들은 까맣게 몰랐다. 이 사건이 선의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탄핵 심판 대상도 헌법재판소가 추려낸 ‘비선조직에 따른 국민주권주의·법치국가주의 위배, 권한 남용, 언론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뇌물수수’ 가운데 상당 부분을 걷어내야 한다. 하지만 특별검사는 박 대통령의 ‘악의’를 의심하고 있다. 박영수 특검은 6일 최종 수사 결과 발표 때 “미르·K스포츠 재단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법인”이라고 말했다. 시민들도 박 대통령보다는 특검에 귀기울이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이 80% 안팎인 게 그 증좌다.

선의는 사인(私人)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가족과 친구, 동료를 대할 때 그 의미가 현현(顯現)한다. 정치인이나 정책 결정권자에게 선의는 독이 될 수 있다. 일이 잘못됐을 때 선의를 방패로 내세워 숨을 수 있다. 그러나 선의는 파국을 문득 해결해버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아니다.

남들 앞에 서서 봉사하고자 하는 공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제대로 된 계획, 견결하면서도 섬세한 실행력, 그 결과에 깨끗하게 책임지는 자세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해 그리로 이끄는 사람이 참된 리더다. 선의는 다만 마음속에 꼭 담고 있으면 된다. 엉뚱한 우물을 파지 않으려면 말이다.

최우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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