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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일이 밝았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에서 풀려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탄핵이 인용되면 그 순간부터 대통령 직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런데 선고 당일까지 박 대통령은 탄핵 결정 이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다. 지난달 헌재 최후변론에서 “앞으로 어떠한 상황이 오든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것이 전부다. 승복하겠다는 명시적인 선언이 없다. 그 때문에 박 대통령이 탄핵 결정에 불복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과 지지자들의 최근 언행을 보면 그런 걱정이 기우로 그칠지 장담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이 불거진 이후 수차례 약속을 어기고 검찰·특검의 수사에 불응했다. 헌재 심리도 온갖 꼼수로 지연시켰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 역시 불복을 예고하는 것 같다. 선고를 하루 앞둔 어제도 탄핵소추 의결 절차와 헌재의 8인 체제 재판부 구성, 고영태 등의 증인신청 기각을 걸어 재심을 거론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추종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한 극우 인사는 “사악한 반역 범죄 집단을 몰아내는 데 모든 걸 걸고 싸우다 죽겠다”고 말했다. 박사모 홈페이지에서는 함께 목숨을 바치겠다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끝까지 법리 다툼을 벌이려 하거나 탄핵 인용을 앞둔 초조감은 이해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양식도 갖추지 못한 몰상식한 행동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탄핵은 엄연히 헌법에 규정돼 있는 절차다. 여당 의원들이 참여한 표결과 헌재의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결정에 그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불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은 시민과 다시 맞서겠다는 반민주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오늘 헌재 결정이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 되어선 안된다. 헌재 결정 이후 풀어야 할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암묵적으로라도 불복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헌법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동료 시민을 아랑곳하지 않고 교양 없는 행태를 보일 것이 뻔하다. 이런 행태가 조기 대선 정국과 맞물려 증폭되면 선거가 민주주의 축제가 아니라 난장으로 변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당장 헌재가 탄핵을 인용해도 깨끗이 승복하겠다는 뜻을 천명해야 한다. 헌재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다고 발표하고 조용히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그것만이 한때나마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고 국정을 맡긴 지지자와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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