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법원이 일선 법관들의 사법개혁 요구를 막기 위해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에게 압력을 가하고, 판사들의 학술 모임을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다 들통났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대법원은 해당 판사가 지시를 거부하자 부임 2시간 만에 지방 법원으로 인사 조치까지 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와 증거인멸, 보복 인사 등이 사법부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발단은 판사 480여명의 학술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법개혁을 위해 전국의 법관 29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다. 설문에는 법관의 독립성 보장,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재판의 공정성 등에 관한 질문이 포함됐다. 그러자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로 갓 발령이 난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판사에게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것을 막고,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성을 상실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부당한 지시에 판사가 반발하자 대법원은 그를 직전 소속이었던 지방 법원으로 다시 인사 발령을 냈다. 문제가 불거지자 대법원은 “해당 판사에게 학회 행사 축소 관련 지시를 한 사실이 없으며, 해당 판사가 법원행정처에 부임한 바 없다”고 거짓 해명했다.

2월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전담법관 임명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이백규(53·사법연수원 18기)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와 주한길(53·24기) 변호사(서울서부지법 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를 신임 전담법관으로 임명했다. 전담법관은 특정 사건 재판만 맡는 법관으로 15년 이상 법조 경력자 중에서 선발한다. 대법원은 2013년부터 매년 3명씩 소액사건 전담법관을 임명해 전국 5개 지방법원에 배치했다. 연합뉴스

대법원 행위는 파렴치하기 그지없다. 학문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도 위배된다. 이 같은 행위를 묵인하거나 조장한 이는 다름 아닌 양승태 대법원장이다. 법관 인사는 대법원장 전권이고, 특히 법원행정처로 발령난 판사를 되돌리는 인사를 대법원장이 모를 리 없다. 양 대법원장은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해 법관의 인권을 침해하고, 사법개혁을 방해해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인사권을 무기로 법관들의 개혁 요구에 재갈을 물리는 ‘양승태 사법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대법원이 판사들을 이처럼 쉽게 여기는데 이들이 진행하는 재판이 사법부 수뇌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렇잖아도 한국의 사법 신뢰도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보고서를 보면 ‘사법제도를 신뢰한다’는 한국인 비율은 27%에 불과하다. 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다.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나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과 달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사법부의 민주적 운영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시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대법원을 복마전으로 전락시킨 사법부 수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양 대법원장은 자문해보기 바란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