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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메타버스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대체 어떤 시대가 온 걸까. 요즘 아이들은 딴 세상을 사는 것 같다고 느낀 어른이라면 메타버스라는 생소한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로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을 일컬어 메타버스라고 한다. 그 안에서 놀고 대화하며 생활하는 그들의 온라인 공간, 사이버 세상을 우선 떠올리면 된다.

메타버스는 가상·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상·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말이다.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가상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바타(온라인 캐릭터)로 변신해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을 영위하는 3차원 가상 세계를 말한다. 가상과 현실의 상호작용을 토대로 현실에 매우 가깝거나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구축되는 사이버 세상이다.

방탄소년단(BTS)은 지난해 9월 빌보드 싱글 1위를 차지한 신곡 ‘다이너마이트’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 안에서 최초 공개했다. 전 세계 3억5000만명의 이용자가 가입한 이 게임은 동시 접속자가 1000만명 이상이다. 게임 속 가상 공간인 콘서트장에 아바타로 모여든 세계 각지 팬들이 BTS의 공연 영상이 나오자 열광하며 관람했다. 새로 나온 안무 이모티콘을 사면 아바타들이 BTS의 춤을 따라 출 수 있었다. 포트나이트는 현실 세상보다 많은 팬들이 한데 모여 존재하는 메타버스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의 ‘제페토’가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이용자가 원하는 맵을 선택해 들어가서 자신의 아바타로 게임을 하거나 사진을 찍고 노는 곳이다. 전 세계 누적 이용자 수가 2억명에 이른다. 지난해 9월 제페토에서 걸그룹 블랙핑크의 팬 사인회가 열렸는데 5000만명 이상이 몰렸다. 팬도 연예인도 아바타로 만나 소통했다.

메타버스는 게임·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순천향대가 이달 초 국내 처음으로 ‘메타버스 입학식’을 치른 게 일례다. 실제 캠퍼스 대운동장을 가상현실로 구현한 온라인 공간에 ‘과잠’(학과 점퍼)을 입은 2500여명의 신입생 아바타들이 모였고, 총장 인사말을 들은 뒤 학과별로 배정된 150여개 방에 입장해 자기소개하며 선배·교수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렇듯 메타버스는 최신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메타버스는 미국 작가 닐 스티븐슨이 1992년 SF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아바타와 함께 처음 쓴 용어다. 소설 속 가상의 나라 메타버스에 들어가려면 누구나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 활동해야 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후 5G·그래픽·가상현실(VR) 등 디지털 기술 발달과 더불어 자리를 넓히던 분야가 비대면이 일상화된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급부상한 것이다.

기술 연구 단체 ASF는 메타버스를 4가지 세계로 분류한다. 첫째, 현실에 가상의 물체를 덧씌우는 증강현실 세계. 포켓몬고 게임이 대표 사례다. 둘째, 내 삶을 디지털 공간에 복제하고 공유하는 라이프로깅 세계. 페이스북·인스타그램·싸이월드 등 소셜미디어류가 여기에 속한다. 셋째, 현실 세상을 디지털로 옮기는 거울 세계. 메타버스 입학식이나 원격 회의·수업이 해당한다. 넷째, 새로운 디지털 세상을 창조하는 가상 세계. 포트나이트 같은 게임을 생각하면 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거나, 원격 회의에 참여하거나,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은 이미 메타버스를 접했다. 메타버스는 예전부터 있었다. 단지 남의 일, 일부의 얘기, 닫힌 공간, 익명이라 위험한 곳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에서 살고 있다. 메타버스는 한두 곳이 아니다. 온라인에 접속하는 순간마다 메타버스에 들어간다. 앞으로는 각자의 메타버스로 일을 하러 가거나 쇼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현실 세계보다 메타버스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아바타도, 가상 세계도 모르겠다며 현실 세상만 고집하다가는 디지털 문명에서 고립될 수 있다.

물론 메타버스가 모두의 낙원인 것은 아니다. 무턱대고 따라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실 세상의 폭을 넓히는 방편이라면 충분히 활용할 만하다. 그곳에서 꽤 많은 소통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메타버스는 어디에 몇 개나 있을까. 그것부터 찾아보자. 딴 세상 타령할 때가 아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갈수록 허물어질 것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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