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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 사회적 공분과 대책 요구가 빗발치곤 한다. 특히 SNS를 통한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면서 해시태그를 이용해 분노를 공유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시민행동이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인아 미안해’는 미루어져 왔던 아동학대 관련 법안에 대해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번 해시태그 운동은 이제까지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 문제를 다뤄왔던 방식이 지닌 한계 역시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아동이 사망에 이를 정도로 참혹한 비극이 발생하면, 시민들이 공분하고, 관련 보도가 폭증하고, 갑자기 입법이 이루어지거나 정부대책이 발표되는 일련의 과정이 그것이다.

아동학대 보도 방식의 문제도 여전하다. 학대 상황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자세하거나, 불필요하게 피해 아동의 신상과 일상의 모습들이 전시된다. 학대 상황과 아동 신상에 대한 과잉 묘사는 범죄를 저지른 ‘괴물’의 잔혹성을 증폭시킨다. 독자나 시청자가 분노할 수 있는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표현들이 제목, 리드, 영상 등에 자주 등장한다. 이런 보도 양태는 문제의 원인을 손쉽게 개인으로 귀속시킴으로써 문제적 개인을 사회에서 “격리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낸다. 이번 사건에서도 양부모의 처벌에 초점이 맞춰지는 양상이다. 괴물 같은 양부모의 이미지가 누적되면서 양부모 특히 양모에게 동등한 수준의 폭력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댓글의 주장이 추천을 받는 일도 생긴다. 기존 보도 방식과 사회적 반응들이 과연 아동학대와 같은 중대한 범죄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되물어봐야 한다.

한편 ‘계모’가 문제이고 ‘입양’이 문제라는 식으로 아동학대의 발생 원인을 정상 가족이 아닌 데서 찾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아동학대 사건에서는 실제 친부모에 의한 학대 비중이 가장 크다. 이는 우리 사회의 아동에 대한 그릇된 인식 그 자체, 즉 아동을 인권을 가진 개인이 아닌 부모의 소유물로 대하는 태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모나 입양 문제의 부각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정상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강화시킨다. 그 결과 과거 아동학대 사건들에서처럼 주변의 아동을 친어머니인 것처럼 돌보아야 한다는 식의 모성 회복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일어나면, 그 원인을 주로 개인의 인성 문제나 정상 가족 내의 모성 부재로 돌리는 편리한 스토리텔링 구조를 우리 사회가 반복해온 것이다. 괴물만 걸러내면 된다는 인식은 아동학대 사건을 “아무도 모르게 발생한 괴물”의 문제로 축소함으로써,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공적 책무 방기의 문제를 가린다.

피해아동의 이름을 보도에서 반복하고 입법에서조차 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도 필요하다. 아동학대와 관련된 제도의 문제를 짚는 보도 역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아쉽다. 상당수의 보도가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 게시된 전문가나 관계자의 글을 전재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에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수차례 일어나면서 특례법이 제정되고 각종 제도가 만들어진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존 특례법이 아동학대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있으며 실행상의 문제, 예산의 문제 등이 산적하여 아동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현실임을 지적해왔다. 이러한 실태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도대체 현행 제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가 모두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현재의 제도가 왜 작동하지 않는지, 예산이 삭감된 것은 어떤 이유인지에 대한 촘촘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아동학대의 문제에 대한 공적 개입의 장을 마련하는 데 언론 보도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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