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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兎死狗烹)은 권력의 속성이다. 생사를 같이한 동료나 부하를 버리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 주변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공신들은 공을 내세우고 전리품의 분배를 요구하지만 권력자는 언제든 그들을 내칠 준비와 각오가 돼 있다. 중국 춘추시대 범려와 문종은 월나라 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쓰러뜨린 최고 공신이었다. 범려는 구천의 인품에 실망해 제나라로 떠나면서 친구 문종에게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은 감추고,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 먹는다(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는 충고의 글을 보낸다. 그러나 문종은 대가를 바라며 월나라 떠나기를 주저하다가 구천에게 반역자로 찍혀 결국 자결한다. 한고조 유방을 도와 초나라를 물리치고 천하 통일에 기여한 한신도 토사구팽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모반 혐의로 강등당한 한신은 “과연 사람들 말이 맞구나. 천하가 평정되니 나도 역시 팽 당하는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명나라 개국공신들은 명태조 주원장에게 당했고, 조선의 공신들은 태종 이방원에게 척살당했다.
한국 현대사에도 토사구팽 사례는 넘쳐난다. 박정희는 권력 강화를 위해 김형욱·이후락 등 핵심 측근을 내쳤다.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팽당해 백담사로 쫓겨가는 비운을 겪어야 했고, 김종필은 김영삼에게 버림받은 뒤 충청 기반의 자민련을 창당했다. 김종인·이상돈·김광두 등 박근혜 정부 창업공신들도 대선이 끝나자마자 토사구팽을 당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검찰은 진보·보수 정권을 넘나들며 권력자의 호위무사 역할을 했지만 지금껏 한 번도 버림받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자에게 일격을 가해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삼국지 영웅 조조는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했는데 검찰이 꼭 그렇다. 전두환·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고, 김현철·김홍업·이상득 등 대통령 아들들과 친형을 잡아넣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몰아붙여 죽음에 이르게 했고, 지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 수사하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4월 13일 (출처: 경향신문DB)
정권은 5년마다 바뀌지만 검찰은 영원하다. 재산 상속 과정에서 약점이 많아 재벌 총수들도 검찰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한국 검찰만큼 막강한 수사기관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2200여명의 검사와 7000여명의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검찰은 직접적인 수사권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경찰 수사도 지휘한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사람이든 주변을 털고 엮어서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다. 아무리 나쁜 사람도 불기소 처리해서 면죄부를 줄 수 있다. 검찰이 저지른 범죄를 적발해 처벌하는 기관도 사실상 검찰인데 검찰의 팔은 늘 안으로 굽는다. 입법·사법·행정부 네트워크도 막강하다.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비롯한 사정·정보 라인과 법무부를 장악하고 있다. 국회는 여야에 관계없이 검사 출신 의원들이 넘쳐난다.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이나 직전 헌법재판소장 박한철 역시 검사 출신이다. 검찰공화국, 검찰파쇼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검찰이 처음부터 이렇게 강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검찰은 중앙정보부나 보안사에 밀렸다. 1987년 민주화투쟁으로 공권력 집행에 법적 절차가 중시되면서 검찰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비리 청산과 정치인 및 고위 공직자, 재벌·대기업에 대한 사정 작업을 주도하면서 권력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 자리에 오르게 됐다. 민주화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검찰이지만 지금은 민주주의의 걸림돌이다. 검찰의 힘이 세질수록 부정부패는 증가하고, 사회 정의는 후퇴하며, 법의 권위는 추락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는 검찰의 폐해가 임계치를 넘어 자정능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정권과 유착한 검찰은 청와대와 비선 실세의 비리에 눈을 감아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불러왔다. 김기춘·우병우 같은 검사 출신은 알량한 법지식으로 시민을 조롱하고 법치주의를 농락했다. 홍만표·진경준 같은 이는 존재 자체가 거악이었다.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과 검경 수사권 조정,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등을 통해 검찰에 시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의 농단과 제2의 우병우를 막을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어느 집단이나 개인도 감히 국민에게 도전하게 해서는 안된다. 국민은 토사구팽의 주체이지 대상이 아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권력 속성이다. 국정을 농단한 교활한 토끼를 잡았으니 이제 사냥개인 검찰을 삶을 차례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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