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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새순이 오르고 꽃도 피지만, 어째 봄 같지가 않다. 봄비가 와도 그때뿐, 하늘은 (초)미세먼지로 뿌옇고 공기에선 먼지 냄새가 난다. 지난 3월21일, 서울의 공기는 뉴델리 다음으로 세계 최악이었다(‘에어비주얼’). 2013년,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미세먼지를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미세먼지가 수명을 감축한다는 연구 결과도 종종 보도된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미세먼지도 침묵의 살인자다.환경부 추정으로 미세먼지의 국내 요인은 50~70%이며, 주요 배출원의 하나가 석탄화력발전이다. 지난 3월25일, 세계 최대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는 당진에서 ‘브레이크 프리(Brake Free)’ 캠페인이 열렸다. 시민들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 ‘그만’을 외쳤다. 그러나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석탄화력발전소 59기를 가동하고, 6기를 짓고 있고, 9기를 더 지을 계획이다. 신규 발전소의 설비용량이 폐기 예정인 노후 발전소의 용량보다 5배나 많다. 올해 정부는 5100억원의 미세먼지 예산을 책정했지만, 정작 주요 배출원인 석탄화력발전과는 결별할 생각을 않는다. 그렇게, 침묵의 살인자를 방치한다.
결별은 힘들다. 위험하거나 유해한 것도 오랜 세월 타성과 관행으로 굳어지면, 거기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엔 그동안 기득권을 누려온 특정 집단이 버티고 있고, 다중의 개인들은 그 현실 앞에서 쉽게 무력해지고 침묵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사회적 참사로 터져 나온다.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참사와 피해 규모를 헤아리기 어려운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때가 차서 터진 사건이다.
재난은 비극이지만, 제대로 대응하면, 철옹성 같던 현실의 왜곡을 바로잡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제대로 된 대응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기억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기억은 단순한 사실의 기억에 머물지 않는다. 참사의 기억은 “사라진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정원옥, <재난을 묻다>).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기억은 참사의 근원인 잘못된 타성과 관행과 단호히 결별할 것을 요청한다.
참사 1091일,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수색을 위해선, 아무리 힘들고 번거로워도, 세월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펄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달라진 게 없다”(71.3%). “오히려 나빠졌다”(14.9%).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의 안전에 대한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 결과다. 놀랍지만, 당연하다. 해방 이후 70년, 이 땅에 켜켜이 쌓여온 펄이 여전히 진실을 가리고 정의를 짓누르고 있으니 말이다. 펄이 너무 많다고 내버려두면, 앞으로도 달라질 게 없다. 안타깝게도,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박근혜 정권은 무너졌어도, 청산할 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도 관심은 이제 온통 대선 정국으로 쏠리고 있다.
대선후보들은 서로가 시대정신의 적임자를 자임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시대정신의 단골메뉴는 통합이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과 결별하지 않은 통합은 임시 봉합일 뿐이다. 이제 그만 덮고 가자는 말과 같다. 촛불과 광장의 시대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상이다. 광장의 촛불은 새로운 세상을 염원했건만, 우리는 낡은 세상의 귀환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자. 우리는 이미 ‘또 다른 세상’을 맛보았다. 아직 현실이 되진 않았지만, 거기서 우리는 당당한 주체로 자발적으로 행동했다. 서로를 환대했다. 모두가 희망으로 벅차했고 설레었다. 이런 세상은 결코 대통령 한 사람에게서 오지 않는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야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자인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었던 낡은 껍데기를 우리가 과감히 벗어버릴 때 새로운 세상은 현실이 된다. “껍데기는 가라.” 그래야 4월이다.
조현철 | 서강대 교수·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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