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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치르게 될 대통령 ‘궐위선거’는 한국정치사의 한 이정표가 되겠지만, 이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또한 간절하다.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비상시국에서 선거의 주요 이슈는 아마 비전보다는 회고가 강조될 것이고, 우리는 후보들의 메시지를 충분히 들어보고 고민할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기표소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가 상대방의 부정적 요소와 의혹을 강조하는 ‘네거티브 선거’로 흐르는 것은 놀랍지 않다. 상대를 공격하고 깎아내리는 것이야말로 단기간에 나를 부각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3D 프린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누가 악필이며 누가 한자성어를 잘못 쓰는지, 누가 조폭과 사진을 찍었으며 어느 가족이 부정과 의혹에 연루되었는지가 연일 지면과 방송을 장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거티브’ 선거를 포기하고 ‘포지티브’ 선거를 하라고 쉽사리 말할 수는 없다. 네거티브는 현대 선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전략이며, 특히나 오늘 한국의 상황에서는 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을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후보들이 네거티브 선거의 의미를 재평가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사 2판4판]대선 마트 (출처: 경향신문DB)

네거티브 선거를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정치 지도자 한 개인의 ‘영도력’과 도덕성에 모든 것을 걸고 진행되는 한국정치과정의 한 변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대통령의 ‘자질’과 ‘주변’이 문제가 돼 탄핵에까지 이른 오늘, 어떻게 박근혜 개인의 문제점들이 숱한 검증과정을 지나칠 수 있었는지가 의문으로 제기되는 오늘, 후보 개인의 자질에 대한 검증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강건한 민주정치의 요체는 결국 최악의 지도자가 선출되었더라도 최악의 정치로 흐르지 않는 제도적 제약들이 아니었던가? 박근혜 정부의 문제가 대통령 개인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각종 비리와 몰상식이 판을 칠 수 있도록 허용했던 시스템의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면 검증되어야 할 것은 후보자 개인보다 그가 몸담고 있는 정치적 생태계이며, 후보자의 도덕성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비전이 아니겠는가.

평균적 유권자가 다양한 네거티브 전략들의 정당성에 대한 나름의 식별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관용의 한계를 지닌다는 것은 여러 연구로 알려진 사실이다. 예컨대 미국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전략 중에서 상대 후보의 입법기록 검증이나 이익단체 관련 여부는 매우 필요한 것으로 인지하고 있는 반면, 상대 후보의 가족이나 개인사를 거론하는 것은 매우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정부패와 관련된 가정사가 매우 중요한 검증 항목이 된 한국적 전통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네거티브 전략은 적어도 중간층 유권자들 사이에서 반드시 역풍을 야기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선거전략으로서 네거티브 선거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도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네거티브 선거 메시지를 가장 귀 기울여 경청하고 있는 이들은 핵심 지지자와 핵심 반대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지지성향이 급격하게 변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편향을 강화하는 양극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은 여러 연구들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패배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이야기 대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에 얼마나 부적절한가에 선거운동의 대부분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일반적으로 네거티브 선거는 정치혐오와 불신을 야기하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참여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격 측과 수비 측을 막론하고 양측 지지자들에게 피로감을 줌으로써 투표참여 수준을 전반적으로 낮춘다면, 그것은 정치적 전략으로서도 효율적이지 못하며, 더 좋은 정치로 귀결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네거티브 선거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가짜뉴스’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참과 거짓을 판별할 시간은 남지 않은 우리의 선거환경을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의 네거티브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목도하게 될 네거티브 선거의 조악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5월9일 우리가 선출하게 될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메시아가 아닐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의 목소리를, 우리 앞의 미세먼지 한 톨이라도 어떻게 걷어낼 것인지에 대한 솔직한 목소리를 지금, 듣고 싶다. 그러나 먹먹한 미세먼지의 장막 속에서 아까운 봄날들이 하루하루 지나가고만 있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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