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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모두 22개다. 버들다리는 청계광장부터 따지면 13번째에 있다. 평화시장 봉제노동자로 일했던 전태일 열사가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해설>을 품에 안고 분신(焚身)사망한 곳이다. 2005년 전태일의 반신부조상이 설치되면서 ‘전태일 다리’로도 불린다. 올해 말이면 청계천 6번째 다리인 수표교 근처에 ‘전태일 기념관’이 들어선다. 전태일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기념관 벽면에는 전태일이 1969년 12월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편지 전문이 금속재 스크린에 새겨진다고 한다. 전태일이 22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 11개월 전에 쓴 자필편지다. 편지에는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신음했던 청년노동자의 분노가 담겨 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주와 극심한 생존경쟁으로 내모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도 드러나 있다.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은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작업으로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의류계통에 종사하는 어린 여공들의 평균 연령은 18세입니다. 노동자들은 인간적인 요소를 말살당하고, 고삐에 매인 금수(禽獸)처럼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해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기업주들은 폭리를 취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생산공들의 피와 땀을 갈취합니다. 그런데 사회는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습니다.”

당시 전태일과 어린 여공들이 일했던 평화시장의 노동환경은 참혹, 그 자체였다. “천장 높이가 1.6m밖에 안돼 허리도 펼 수 없는 2평 남짓한 작업장. 먼지 가득한 그곳에서 하루 13~16시간 일해 폐결핵, 신경성 위장병을 앓고 있는 13세의 어린 소녀들. 이들은 건강검진은커녕 근로기준법에 담긴 노동자의 기본 권리마저 박탈당하며 살아가고 있다.”(경향신문 1970년 10월7일자)

전태일은 근로감독관이 답신을 보내지 않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도 장문의 편지를 썼다. 하지만 편지는 끝내 전달되지 못했다. “각하에게 아픈 곳을 알려드리니 고쳐 주십시오. 하루 14시간의 작업시간을 10~12시간으로 단축하십시오. 일요일마다 쉬기를 희망합니다. 시다공의 수당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전태일은 두 통의 편지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숨진 전태일의 ‘노동해방의 꿈’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도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선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1930년에 펴낸 소책자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100년 뒤에는 살림살이가 8배 나아져 노동시간이 주당 15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는 전 세계가 대공황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때여서 케인스의 예측은 ‘꿈같은 얘기’로 간주됐다.

하지만 케인스가 소책자에 소개한 여성 노동자의 묘비명은 눈길을 끌었다. “친구들아,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 결코 울지도 말라. 나는 이제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네.” 죽어서 ‘노동의 사슬’에서 벗어났으니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다.

100년 뒤에는 노동시간이 주당 15시간으로 줄어들 것이란 케인스의 예측은 단지 ‘희망사항’이었던 것으로 판명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에 나서고 있는 유럽 각국의 사례를 보면 허황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주당 노동시간이 27시간인 네덜란드는 조만간 주당 21시간으로 줄인다고 한다. 독일의 노동시간은 주당 25시간이고, 스웨덴·덴마크·벨기에·노르웨이 등은 주당 노동시간이 32시간 안팎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케인스의 예측이 한참 빗나갔다. 국회는 지난달 28일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노동시간 단축의 첫발을  뗐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28.1%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558만명은 여전히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동시간 제한뿐 아니라 연장·휴일수당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는 것이다.

케인스가 예측한 주당 15시간은 아니더라도 세계 최장 수준(2016년 기준 1인당 연평균  2069시간)인 노동시간이 줄어들 때까지 한국 노동자의 또 다른 이름은 ‘전태일’이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의 시간’을 되찾길 열망하고 있다. 49년 전 전태일이 편지에서, 88년 전 케인스가 소책자에서 꿈꿨던 것처럼….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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