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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선 논설위원


 

민주통합당의 존재감이 좀체 되살아날 기미가 없다. 대선이 4개월도 남지 않았으나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은 ‘마이너리그’를 면치 못하고, 이를 타개할 만한 후보들이나 당 지도부의 의지도, 능력도 안 보인다. 후보들은 참여정부의 책임론과 같은 과거 타령을 일삼고, 당은 여당을 겨냥해 삿대질을 해댈 뿐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대로는 상대의 실수에 따른 반사이익조차 챙기기 힘든 지경이다. 우연한 대반전의 계기가 찾아들 성싶지도 않다. 제1 야당이 후보도 내지 못하는 미증유의 대선이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돼 가는 것 같다. 총체적 난국이다.


 

민주, 오픈프라이머리 거리 홍보 (경향신문DB)



그 한가운데 선거 전문가를 자임하는 6선 관록의 이해찬 대표가 있다. 그가 국민의정부 탄생과 참여정부 출범의 주역 중 한 사람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문제는 그가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새삼 거론하기조차 민망한 대선후보와 당 대표, 원내대표 후보들 간 담합이 단적인 예다. 그 일로 민주당의 대선 밑그림이 담합 굴레에 묶여 버렸다. 후보 단일화를 통해 야권 표를 긁어모으는 제2의 노무현 만들기가 그의 대선 방정식일 터이다. 하지만 ‘노풍’ 껍데기만 빌렸을 뿐 내용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무슨 일을 모색해도 친노 대 비노 대결 구도다. 2002년 정치공학으로 2012년 대선을 바라본 결과다. 스스로도 경선 비책을 물으면 당이 후보를 앞서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속수무책이라는 실토다. 이 대표의 원죄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풍부한 경륜이나 정보력, 관리 능력에서 정평이 났다. 노회한 정객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 의원들이 그를 원내사령탑으로 택한 이유다. 그가 방탄국회 논란을 자초했다. 패착이다. 검찰의 표적 수사라는 그의 말을 믿고 싶다. 그럴수록 당당하게 맞서야 했다. 뒤늦게 자진출석했지만 실기했다. 정치적 사건은 정치적으로 맞대응하면 휘말린다. 그를 지켜줄 수 있는 건 국민이다. 불체포특권도, 동료 의원도 아니다. 역풍이 만만치 않다. 19대 국회 개원 지연에 대한 온갖 비판을 감수하면서 얻어낸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나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별검사제 도입, MBC 장기파업에 대한 국회 문방위 차원의 청문회가 모두 날아갈 판이다. 국정을 감시해야 할 제1 야당, 나아가 원내대표라는 그의 책임이 막중하다.


문재인 경선 후보는 당내에서 변함없는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지지율에 확장성이 없다. 다른 데서 원인을 찾을 일이 아니다. 자신이 문제다. 경선 승리를 의식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난데없이 공동정부론을 제안하면서 발목이 잡혔다. 상호 보완을 의도했겠지만 한쪽 지지율이 오르면 상대는 내려가는 시소 게임을 하는 대체재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승계하고자 하는 뜻도 나무랄 수는 없다. 방법이 틀렸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치켜세우며 그 그늘에 안주하려는 모습이어선 안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염(念)은 성공적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서민의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그의 뜻과 불행한 죽음이 겹쳐진, 그래서 가슴을 아리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런 문 후보의 태도가 경선 자체를 과거 타령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작 이종걸 최고위원의 ‘그년’ 발언을 두고는 사과를 종용한 후보가 단 한 명도 없다. 후보들이 국민들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박영선·이인영 의원을 비롯한 소중한 인재들은 어디서 뭘 하는가. 경선에서도, 당직에서도 자유로운 두 사람에게 하는 일이 없어선 곤란하다. 그들은 당 지도부가 흥행 차원에서 경선 실시 1년 이내에 최고위원을 지낸 인사들은 참여할 수 없도록 한 당헌 변경까지 검토하면서 역할을 기대했던 인사들이다. 박 의원은 모 캠프 합류설이 돌지만 당이 이 지경이면 지도부 쇄신을 촉구하고, 후보군의 분발을 독려하면서 다른 의원들도 대선 대오에 함께할 수 있도록 전면에 나서는 게 옳다. 의원 127명 중 50여명이 어느 캠프에도 이름조차 올려놓지 않은 채 구경꾼으로 전락한 현실도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대선은 주자들끼리 겨루는 1대1 게임이 아니다. 후보와 당의 역량을 결집해야 하는 총력전이다.


민주당의 추락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사람들, 변화를 바라며 대선을 기약하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다. 민주당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민주진보 진영의 패퇴라고 할 수도 있다. 당장 미래 비전을 겨루는 경쟁에 나서야 한다. 반향을 낳은 손학규 후보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슬로건은 중산층과 서민의 최대 관심사인 노동과 복지, 교육 문제의 해결을 함축한다는 데서 그 힘이 나온다. 노동시간이 단축되지 않으면, 사회안전망이 뿌리 내리지 않으면, 교육 현실이 달라지지 않으면 ‘저녁이 있는 삶’은 불가능하다. 왜 이 지경인가에 대한 성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미래 건설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절실한 때다. 민주당은 지금 대선 승리를 꿈꾸는가. 대변신이 없는 한 들러리가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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