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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6>에 따르면, 1970~1974년생들은 2002년 이후 각종 선거에서 꾸준히 진보적인 투표 성향을 보여왔다. 베이비붐 세대가 2007년 대선을 기점으로 빠르게 보수화된 것과는 분명히 대조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1970년대 초반생의 이러한 정치적 성향은 어디에서 발원하는 것인가? 사실 이 세대는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신세대론’이나 ‘X세대론’을 통해 ‘세대론’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바 있다. 1970년대 초반생을 ‘신세대’로 호명하던 이들은 이전 세대의 광고 전문가나 문화비평가들이었다.

1989년에 5000달러를 돌파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향해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점이었으니, 그들에게 급선무의 과제는 ‘소비 사회’로의 변화를 주도할 새로운 인간형을 발견해내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68혁명 이후 유럽의 문화적 전환이나 1980년대 일본의 신인류론을 참고 삼아 새로운 ‘세대론’의 얼개를 짜나갔고, 30% 초반대의 대학진학률을 기록하며 이제 막 캠퍼스에 진입한 1970년대 초반생 일부, 특히 도시 중산층의 자녀들을 주목했다. 그리고 집단에 귀속감을 느끼기보다는 ‘나’를 중요시하는 개인주의적 성향, 정치적 대의보다는 일상의 삶과 취향을 소중히 여기는 ‘라이프스타일’ 지향적 태도, 다양한 매체 경험을 통해 축적된 시청각적 문해력 등 표면적으로 이전 세대와 질적으로 차별화된 문화적 특성이 ‘신세대’의 속성으로 나열되곤 했다.

그런데 이 집단의 속성은 이렇게 ‘문화적’으로 나열되고 끝나는 것이었을까? 1970년대 초반생이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에 유소년기를 보낸 첫 세대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실제로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 매년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10번 넘게 목격했고, 바로 그 시기에 이들의 부모 세대인 1940년대생은 30~40대의 나이로 수출주도형 산업화와 지역 불균등 발전이 만들어내는 계층 형성과 분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의 3저 호황을 전후로, 서울에서는 1940년대생 대졸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중산층 문화가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전략적 근거지로 삼아 완성 단계에 돌입하고 있었던 반면, 지방에서는 불균등 발전의 결과로서 지역에 따라 1차 산업 기반의 전근대적 계층 질서가 여전히 유지되거나 중화학공업 단지라는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계층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동남권과 기타 지역 등 각각의 지역에서 성장한 1970년대 초반생에게 고도 성장기는 계층과 지역에 따라 차별적으로 경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71년생 소설가 백민석이 자신이 경험한 가난은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의 가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의 가난이었다고 말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차별적 경험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해진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이들이 30대에 진입하던 그 시점에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 가능성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졸 엘리트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90년대의 신화가 고도성장기의 거품이 만들어낸 집단적 백일몽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고, 그 백일몽의 마지막 등장인물이었던 1970년대 초반생은 기나긴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계층의 굴레를 뒤집어쓴 채로 고도성장기의 닫히는 문과 저성장 시대의 열리는 문을 양손으로 붙잡고 버티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저출산 1세대의 부모가 되기로 작정한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30대에 진입한 이후 뚜렷하게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보이며 기성세대의 중산층이 주도하던 사회 전반의 보수화를 막아내는 인간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면, 그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봐야 할 대목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그들의 자녀들이 명확히 구분된 계층 세습의 이동 경로를 따라 대학에 진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를 경험한 가족 3대의 역사가 그렇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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