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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 달도 채 안되었지만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통일부가 5월 말과 6월 초 10개 민간단체들의 대북접촉을 승인했다. 대북접촉이 방북과 남북왕래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6·15를 전후해 많은 사람들이 방북할 것 같다. 그런데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더니 얼마 전까지는 꿈도 못 꾸던 대북접촉이 승인되고 민간차원의 방북도 이루어지니,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민간 접촉·교류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남북 당국대화의 문호도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북관계 개선뿐 아니라 북핵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남북대화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의 손을 한쪽이라도 잡고 있으면, 북한이 나머지 손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1970년대 초 남북대화에 회의적이던 보수층에 남북대화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1981·1~1989·1)도 “소련은 악마의 제국이다. 그러나 악마의 제국이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악마의 제국과의 대화’는 결국 미·소 핵무기 감축까지 도달했다.

미국은 작년 10월부터 미·북 1.5트랙 대화를 시작했다. 북한에선 당국자, 미국에선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전직 관리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1.5트랙이라 부른다. 작년 10월 쿠알라룸푸르, 11월 제네바에 이어 금년 5월 오슬로에서 대화를 이어왔다. 작년에는 금년 1월 출범할 새 정부의 대북정책 자료수집 차원에서 대화를 했을 것이고, 지난 5월에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 설정을 위해 만났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 ‘대북 선제타격론’과 ‘김정은 정권교체론’을 들고나왔다가, 4월 ‘최대의 압박과 관여’로 조정하더니, 5월25일 “강력한 제재로 북한을 압박하되 최종적으로는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대북정책 최종안에 서명했다. 결국 ‘대화’에 방점이 찍힌 셈인데, 이 같은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는 작년 10월 이후 진행되어 온 1.5트랙 대화의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개성공단 조업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공약했다. 그런데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후에도 미사일을 4번이나 발사했다. 남북관계를 잘 발전시켜 나가려는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었다. 취임 나흘 만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문 대통령은 직접, 즉각적인 대응을 했다. “북한의 군사행동에는 강력하게 대처하고 제재도 불사하겠다. 그러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대화 문호는 열어두겠다”고 했다. 그렇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대화의 단초를 어떻게 여느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북한은 1주일 간격으로 미사일을 4번 발사했고,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1월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벌써 9차례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그런데 북한은 앞으로도 미사일 발사를 계속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북한은 미국이 직접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벼랑 끝 전술’ 차원의 도발을 계속할 것이다.

이런 시점에 문재인 정부가 남북 당국대화를 시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정책과 핵정책은 계속 세밀하게 탐색해 나가야 한다. 쓸 수 있는 방법이 미국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1.5트랙 대화이다.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전직 관리들이 국가를 위한 봉사 차원에서 남북 1.5트랙 대화에 나서준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을 것이고, 남북관계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당국대화 시동을 걸기 전에 1.5트랙 대화를 공식 지원할 수 없지만 승인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이런 접근을 굳이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여당 정책연구원이 정부와 무관하게 지원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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